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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430년]] [[풍발]](馮發)이 병사하자 풍발의 아우 풍홍과 아들 풍익이[[풍익]]이 왕위 다툼을 벌였고, 결국 풍홍이 조카인 풍익과[[풍익]]과 그 형제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 풍홍은 화북을 통일한 [[북위 (북조)|북위]](北魏)의 압박을 받아 [[436년]] [[고구려]](高句麗)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풍홍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고구려 장수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에게 수만의 군사를[[군사]]를 내주어 북연의[[북연]]의 밀사 양이와 함께 풍홍을 맞이해오도록 하였다. 고구려군이[[고구려]]군이 자신을 맞이하려 하자 풍홍은 도성인 화룡성에 남아있던 백성들을 동쪽의 [[고구려]] 땅으로 이주시키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 자신도 [[고구려]] 땅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풍홍이 과거의 위세를 잊지 못하고 교만하게 굴자 [[438년]] 음력 3월, 장수왕은[[장수왕]]은 풍홍을 [[평곽]](平郭)으로 가게 했다가 다시 [[북풍]](北豐)에 머물도록 하였다. 또한 풍홍의 시종을 빼앗고, 태자 풍왕인(馮王仁)을 볼모로 잡았다. 그러자 풍홍은 분개하여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풍홍의 요청을 받은 송의 [[유유 (송)|유유]]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사신 [[왕백구]](王白駒) 등을 고구려에[[고구려]]에 보내 풍홍을 자신들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430년]] [[풍발]](馮發)이 병사하자 풍발의 아우 풍홍과 아들 풍익이 왕위 다툼을 벌였고, 결국 풍홍이 조카인 풍익과 그 형제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 풍홍은 화북을 통일한 [[북위 (북조)|북위]](北魏)의 압박을 받아 [[436년]] [[고구려]](高句麗)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풍홍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고구려 장수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에게 수만의 군사를 내주어 북연의 밀사 양이와 함께 풍홍을 맞이해오도록 하였다. 고구려군이 자신을 맞이하려 하자 풍홍은 도성인 화룡성에 남아있던 백성들을 동쪽의 고구려 땅으로 이주시키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 자신도 고구려 땅으로 향하였다.
 
이에 장수왕은[[장수왕]]은 풍홍이 송으로 가는 것이 고구려에[[고구려]]에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고 장수 [[손수 (고구려)|손수]]와 [[고구]]로 하여금 군사를[[군사]]를 이끌고 가서 풍홍과 그의 가족들을 죽이라고 명했다. [[손수 (고구려)|손수]]와 [[고구]](高仇)는 북풍에서 풍홍과 그의 가족 10명을 참살했다. 이후 송의 사신 [[왕백구]]가 풍홍의 군사 7000명을 이끌고 손수와 고구가 이끄는 고구려군을[[고구려]]군을 습격하는 바람에 고구는 죽고 손수는 생포되었다.
그러나 풍홍이 과거의 위세를 잊지 못하고 교만하게 굴자 [[438년]] 음력 3월, 장수왕은 풍홍을 [[평곽]](平郭)으로 가게 했다가 다시 [[북풍]](北豐)에 머물도록 하였다. 또한 풍홍의 시종을 빼앗고, 태자 풍왕인(馮王仁)을 볼모로 잡았다. 그러자 풍홍은 분개하여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풍홍의 요청을 받은 송의 [[유유 (송)|유유]]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사신 [[왕백구]](王白駒) 등을 고구려에 보내 풍홍을 자신들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수왕은[[장수왕]]은 즉시 대군을 동원하여 풍호의[[풍호]]의 군사를[[군사]]를 쳐 왕백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신 편에 송으로 압송시켰다. 이에 송은 고구려의[[고구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왕백구를 감옥에 가뒀다가 고구려의[[고구려]]의 눈을 피해 석방하였고 훗날 북위국의 풍태후가 풍홍의 손녀이다.
이에 장수왕은 풍홍이 송으로 가는 것이 고구려에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고 장수 [[손수 (고구려)|손수]]와 [[고구]]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풍홍과 그의 가족들을 죽이라고 명했다. [[손수 (고구려)|손수]]와 [[고구]](高仇)는 북풍에서 풍홍과 그의 가족 10명을 참살했다. 이후 송의 사신 [[왕백구]]가 풍홍의 군사 7000명을 이끌고 손수와 고구가 이끄는 고구려군을 습격하는 바람에 고구는 죽고 손수는 생포되었다.
 
== 가족 ==
이 소식을 들은 장수왕은 즉시 대군을 동원하여 풍호의 군사를 쳐 왕백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신 편에 송으로 압송시켰다. 이에 송은 고구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왕백구를 감옥에 가뒀다가 고구려의 눈을 피해 석방하였고 훗날 북위국의 풍태후가 풍홍의 손녀이다.
 
{{토막글|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