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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철원군수리조합 조합장(1921년 6월 선임)과 조선인산업대회 강원도위원(1921년 7월 30일 임명)을 역임했으며 네 차례(1926년 9월 23일과 1930년 4월 1일 임명, 1934년 4월 16일과 1938년 5월 2일 중임)에 걸쳐 강원도농회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1927년]] [[4월 1일]] 강원도 민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세 차례(1927년 4월 15일, 1930년 12월 22일, 1938년 5월 18일 임명)에 걸쳐 조선농회 통상위원으로 재직했다. 1927년 6월부터 1934년 4월까지 조선제사(朝鮮製絲)주식회사 감사 및 전무이사로 재직했으며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29년]] 5월 철원면협의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1년]] 5월 철원읍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박람회 평의원(1929년 5월 1일 촉탁)과 강원도중앙수리조합 평의원(1930년 12월 6일 임명), 강원승입(江原繩叺)주식회사 이사(1931년 3월 ~ 1933년 4월)를 역임했고역임했으며 [[1932년]] [[10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 쇼와 5년 국세 조사 기념장을 받았다. [[1933년]] [[5월 11일]]과 1937년 5월 11일 강원도 관선 도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두 차례(1933년 6월 13일, 1937년)에 걸쳐 강원도 도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조선곡물협회 강원도 대표(1934년 8월), 조선농회 의원(1934년 10월) 및 평의원(1935년 2월), 경춘철도주식회사 대주주(1936년 7월), 강원도지방미곡통제조합회 부회장(1936년 12월 3일 선임), 노고산장택지경영(老姑山莊宅地經營)주식회사 사장(1937년 4월 선임), 조선중앙무진(朝鮮中央無盡)주식회사 창립위원(1937년 4월) 등을 역임했으며 [[1939년]] [[6월 3일]]부터 [[1942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도회의원 재직 시절인 1937년 8월 10일 10만 원 상당에 달하는 애국기를 제작하고 헌납하는 데에 참여했다. 1939년 강원도 도회 부의장으로 중임하는 한편 철원양조주식회사 사장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