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니케아 공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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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회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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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state=collapsed}}
'''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caenum Primum)는 [[325년]]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터키]]의 [[이스탄불]]) 근교의 고대 그리스의 작은 식민도시 [[니케아]](''Nicaea'')에서 열린 [[공의회]]이다. '''니케아 공회의''', '''제1회 세계회의''' 또는 '''제1회 니케아 공회의'''라고도 한다.
 
니케아 공회의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세계적 회의(동서 양교회의 총회의)이다.<ref name="글로벌_1">니케아 공회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 공의회 소집의 동기 ==
 
== 동기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국가통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의 세력을 이용하려 했으나 당시의 교회 내부에는 많은 교리의 대립이 있어 수습이 곤란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전 교회의 사교(司敎)·사제(司祭) 약 300명을 니케아에 소집하여 대회의를 열었다.<ref name="글로벌_1"/>
{{인용문|
* 로마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의 교리 정리
*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와 반대자인 [[아타나시우스]]와의 교리 대립
}}
 
== 공의회의 쟁점과 교파 ==
회의 내용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 즉 아버지인 하느님과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의사내용(議事內容)은 아리우스파, 알렉산드로스파, 중간파(오리게네스 주의파)의 3파로 나뉘어 논의되었는데, 난항을 거듭한 결과 아버지와 아들을 동질(호모우시오스)로 보는 니케아 신조(오늘날의 니케아 신조와는 다소 다름)가 채택되어 아버지와 아들을 이질로 보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삼아 일단 결말을 보았다.<ref name="글로벌_1"/>
{{인용문|
* [[아리우스]]와 그의 분파
* [[삼위 일체론|삼위 일체론파]]
}}
 
== 공의회 결과 ==
그러나 이 회의로 교리논쟁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후에 더욱 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회의에 있어서 황제의 권력이 교회내 의 문제에 개입하는 악례(惡例)를 남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ref name="글로벌_1"/>
{{인용문|
* [[니케아 신조]]를 통해, [[삼위일체]] 교리가 바른 교리로 선택되었다.
*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교회]]에서 추방하였다.
}}
 
== 주석 ==
<references/>
 
== 참고 자료 ==
{{글로벌}}
 
{{토막글|기독교}}
{{공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