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비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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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신부의 건강 악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영적 체험인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
비오 신부의 건강은 1960년대 동안에 계속해서 악화되어갔다. 1968년 그가 성흔을 받은 것에 대한 50주년 기념일을 지낸 다음날에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ref name="PioProfile"/> 그 다음날인 1968년 9월 22일 비오 신부는 [[장엄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으나,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자신이 미사를 제대로 집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수도회 장상에게 지난 몇 년 동안 매일 해오던 것처럼 [[평미사]]로 대체하여 집전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수도회 장상은 수많은 순례자가 참례할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장엄미사로 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결국 비오 신부는 수도회 장상의 뜻에 순명하여 장엄미사를 집전하였다. 장엄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비오 신부는 굉장히 수척해진 모습으로 보였다. 그가 입을 열 때 목소리는 나지막하였으며, 미사를 마치자마자 너무 지친 나머지 제단 계단을 내려갈 때 거의 쓰러질 뻔하였다. 그리하여 동료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사들의 부축을 받고 내려갔다. 이 미사가 비오 신부가 생전에 집전한 마지막 미사였다.
 
1968년 9월 23일 이른 아침에 비오 신부는 마지막 고해성사를 보고 서약 갱신을 하였다. 비록 더는 기도문을 암송할 기력이 없었지만,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묵주]]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ref name="PioProfile"/> 마지막까지 비오 신부는 “예수, 마리아”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였다. 새벽 2시 30분경 비오 신부는 “나는 두 분의 어머니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한 두 어머니란 그의 생모와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새벽 2시 30분에 비오 신부는 침상에 누운 채 “성모님!”하고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선종하였다.<ref name="Ruffin">{{Cite book| last = Ruffin| first = Bernard C.| authorlink = C. Bernard Ruffin|title = Padre Pio: The True Story| year = 1991| publisher = Our Sunday Visitor| isbn = 9780879736736| pages = 444| postscript = <!--None-->}}</ref>
 
비오 신부의 장례 미사에는 100,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례하였으며, 유해는 그해 9월 26일 은총의 성모 성당 묘소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그는 자주 “나는 죽은 후에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의 진정한 소명은 내가 죽은 이후에 시작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ref name="PioProfile"/> 비오 신부가 선종한 후 그의 몸에 나타났던 성흔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ref name="PioProfile">
{{Cite book| last = Schug| first = Rev. John| title = A Padre Pio Profile| year = 1987| publisher = Huntington| isbn = 9780879738563| postscript = <!--None-->}}</ref>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