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비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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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비오 신부가 선종한 지 40년 뒤에 성 비오 신부의 유해를 전시하기 위해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성 비오 신부의 유해를 관리하고 있는 성당측은 성 비오 신부의 유해가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교황특사 자격으로 산조반니로톤도 성당에 파견된 대주교 [[도메니코 담브로시오]]는 “두개골의 정수리 부분은 부분적으로 뼈가 드러났지만, 턱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유해의 나머지 부분 역시 잘 보존되었다.”라고 발표하였다.<ref>{{cite news|url=http://news.bbc.co.uk/2/hi/europe/7275514.stm|title=Italy exhumes revered monk's body|work=[[BBC Online]]|accessdate=16 March 2008|date=3 March 2008}}</ref> 또한 대주교는 성 비오 신부의 유해에는 더 이상 성흔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발표하였다.<ref>{{cite web |url= http://www.zenit.org/article-21974?l=english |title= St. Padre Pio's Body Exhumed |accessdate= 2008-03-06 |publisher= Zenit }}</ref> 그리고 성 비오 신부의 손은 마치 방금 전에 손톱 다듬기를 한 듯이 보였다고 말했다. 장의사들은 훼손된 성 비오 신부의 얼굴 부분에 대한 복원 작업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얼굴의 부패 때문에 실물처럼 만든 [[실리콘]] 가면을 덧씌울 수밖에 없었다.<ref>[http://www.telegraph.co.uk/news/main.jhtml?xml=/news/2008/04/25/wchurch125.xml Moore, Malcolm. "Padre Pio pilgrims flock to see saint's body"] ''Telegraph''. 25 April 2008</ref>
 
성 비오 신부의 시신이 수도원 지하 묘지에 있는 수정과 대리석, 은으로 치장한 유리관으로 이장되기 전에 교황청 시성성 장관인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 추기경 집전으로 그해 4월 24일 산조반니로텐도에 있는 은총의 성모 성당에서 미사가 거행되었다. 당시 미사에는 1,500명의 신자가 참례하였다. 비오 신부의 유해는 수정과 금실로 장식한 흰색 허리띠에 갈색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사복을 입은 채 손에는 큰 나무 십자가를 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2008년 12월까지 전세계에서 80만 명에 이르는 순례자가 성 비오 신부의 유해를 보려고 미리 예약 신청을 하였지만, 하루에 고작 7200명만이 열을 지어 성 비오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유리관 옆을 지나갈 수 있었다. 교회 측에서는 순례자들을 배려하여 성 비오 신부의 유해 전시를 2009년 9월까지 연장하였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