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드 삭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r2.7.1) (로봇이 바꿈: br:Hermann Moritz Saks |
잔글 →군대 경력 |
||
27번째 줄:
== 군대 경력 ==
12세 때, 삭스는 [[말플라크 전투]](Battle of Malplaquet)에서 [[투르네]](Tournai)와 [[몽스]]
그 다음에 삭스는 [[스웨덴]]과 전쟁 중인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 아래서 군역을 하였다. 1711년 그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그를 인정하였고,
성인이 되어 삭스는 개인적으로나 성격적으로, 그의 아버지를 상당히 많이 닮게 되었다. 그의 [[악력]]은 너무나 강력하여, 그의 생애 말기에도 한 손으로 [[말편자]]를 구부러뜨릴 수가 있었고, 그의 에너지와 끈기력은 그가 많은 과용을 일으킨 병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1714년 삭스는 그의 아버지의 신하들 가운데서 부자인 로레벤 백작가의 영양, [[요하나 빅토리아 로레벤|요하나 빅토리아]]과의 정략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재산을 빠른 속도로 탕진하여, 곧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다. 삭스는 요하나 빅토리아가 그에
1717년 [[투르크]]와의 전쟁에 종사한 후, 그는 파리에서 [[수학]]을 공부하였고, 1720년에는 maréchal de camp의 직책에 위임되었다. 1725년 삭스는 그에게 구혼한 [[안나 이바노브나|안나 이바노브나 공작 부인]](훗날의 러시아의 여제)의 후원으로, 쿨란스키 [[공작 (작위)|공작]] 선출을 위해 협상에 들어갔다. 그는 1726년 공작으로 선출되었으나, 러시아인들은 그와 공작 부인과의 결혼을 거부하였다. 그는 곧 그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연인인 프랑스의 여배우, [[아드리엔 르쿠브뢰르]]의 지원으로 그녀에게 3만 [[리브르]]를 빌려, 군대를 양성하였다. 삭스는 이를 1727년까지 유지하였으나, 철퇴하고 파리에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