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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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로마 가톨릭]]
}}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llang|it|Carlo Emanuele II di Savoia}}, {{llang|fr|Charles Emmanuel II de Savoie|샤를 에마뉘엘 2세 드 사부아}} [[1634년]] [[6월 20일]] ~ [[1675년]] [[6월 12일]])는 [[사보이 공국]]의 군주이자 [[키프로스 왕국|키프로스]]와 [[예루살렘 왕국|예루살렘]]의 왕이다. 사보이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와 프랑스 공주 [[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마리아 크리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형 [[사보이의 [[프란체스코 자친토]]가 즉위 1년만에 요절하면서 삼남 카를로 에마누엘레는 4세의 나이에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섭정을 받아 사보이 공작위를 이었다.
 
그는 [[1663년]] 어머니의 조카이자 자신에게는 이종사촌누이가 되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의 딸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마들렌느|프랑수아즈 마들렌느]]과 결혼했다. 프랑수아즈 마들렌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1년만에 죽었고 카를로 에마누엘레는 [[사보이의 마리 잔]]과 재혼했다. 아버지와
그는 마찬가지로[[사보이 카를로공국]]의 에마누엘레도발달에 젊은 나이에힘을 죽었고쏟았고, 아들2만명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상비군]]가 모친의 섭정 하에 사보이 공작이영토에 되었다배치하였다.
또 열렬한 [[카톨릭 교도|천주교]]였던 그는 [[왈도파]]의 학살을 명령하여 유럽 각지의 문학가로부터 비난을 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카를로 에마누엘레도 젊은 나이에 죽었고 아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모친의 섭정 하에 사보이 공작이 되었다.
 
{{생애|1634|1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