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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柳仲逸, [[1963년]] [[4월 28일]] ~ )은 전 [[한국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다.
삼성 좆까!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활동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이루었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199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 선수)|김용희]], [[김응룡]],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뒤를 이어 [[2011년]] [[1월 5일]]에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몇 차례 선출되었다. 불펜 투수들을 많이 운용하였던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와 달리 그는 "공격 야구"를 강조하여 취임식에서 올드 팬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감독 부임 첫 해에 떠나 있던 대구 지역의 야구 민심이 돌아오게 되었고, 올스타를 5명 배출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54771.htm 삼성 올스타 최다 배출 '류중일 효과+세대교체' 성공] - 스포츠서울</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 시리즈|한국 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그러나 감독 부임 두번째 해인 [[2012년]] 정규 시즌 초반,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이 하위권으로 쳐지자 '''"돌중일"'''(선수들에 대한 지나친 관용), '''"관중일"'''(심판의 판정 논란에 항의하지 않음), 공무원야구(주전이 정해져 있는 야구)라는 팬들의 비아냥을 듣고 있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205250100201590015025&servicedate=20120524 류중일 감독, "팬들이 나를 '관중일'이라 부른다."] - 스포츠조선</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