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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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등 직후 다음 시즌에 곧장 1부 리그로 복귀하였으며, [[스티브 코펠]](Steve Coppell, 현 [[레딩 FC|레딩]] 감독)이 이 시즌 막바지에 데뷔하였고 FA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7년에는 [[리버풀 FC|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을 들어 올렸다. 도허티의 이와 같은 성공과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불륜 사건에 휘말려 해임되었다. [[데이브 섹튼]](Dave Sexton)이 [[1977년]] 여름에 그의 자리를 이었고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버즈비와 도허티의 공격 전술을 선호했던 서포터들로부터 인기를 잃었고 우승에는 못 미치는 성적으로, 해임 직전의 7연승에도 불구하고 [[1981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론 앳킨슨]](Ron Atkinson)이 감독 자리에 올랐고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웨스트 브롬]]에서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을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리고 왔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3년]], [[1985년]] FA컵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85-86 시즌 리그 초반 10연승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리버풀 FC|리버풀]]에 내주고 말았고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강등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결국 앳킨스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해임되었다.
 
퍼거슨 사기 나가라 멍청이
=== 퍼거슨 시대의 개막(1986년 ~ 1998년) ===
[[파일:Alex Ferguson.jpg|thumb|200px|left|앨릭스 퍼거슨 감독]]
[[앨릭스 퍼거슨]]은 [[애버딘 FC|애버딘]]에서 맨체스터의 감독으로 왔고, 앳킨슨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올랐다. 그의 첫 시즌 성적은 11위였다. 다음 시즌인 1987-88에는 2위라는 성적을 거두었고 브라이언 맥클레어(Brian McClair)가 [[조지 베스트]] 이후로 오랜만에 시즌 20골을 달성했다. 그러나 다음 두 시즌 유나이티드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팬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1990년]]에는 해임 위기에까지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크리스털 팰리스]]를 FA컵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0-91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스페인 챔피언 [[FC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리즈 유나이티드 AFC|리즈 유나이티드]]에 리그를 내줬다. 한편, 1991년에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4700만 파운드의 주식 평가를 받아 대중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ref>{{서적 인용|성=리(Lee) |이름=사이먼(Simon) |편집자=씬 헤이밀(Hamil, Sean); 조나단 미치(Michie, Jonathan); 크리스틴 오톤(Oughton, Christine) |제목=전반전과 후반전? 축구 비즈니스(A Game of Two Halves? The Business of Football)|확인일자=2007년 5월 28일 |출판사=런던 대학교|장=CHAPTER 4. The BSkyB Bid for Manchester United Plc&nbsp;— 은행권의 모든 애착(All the Passion of a Banknote)}}</ref>
 
[[1992년]] 11월 [[에리크 칸토나]]의 합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활기가 돌았다. [[라이언 긱스]]를 비롯한 [[폴 인스]], [[데니스 어윈]], [[개리 팰리스터]]와 함께 1992-93 시즌 우승을 이끌어 1967년 이후로 20여 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FC|노팅엄 포레스트]](Nottingham Forest)로부터 이적해 온 [[로이 킨]]의 활약으로 1993-94 시즌에 최초로 리그컵과 FA컵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더블을 달성하였고, 로이 킨은 주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94년]] [[1월 20일]] 과거 맨유에 영광을 안겼던 버즈비가 사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다.
 
1994-95 시즌에 [[에리크 칸토나]]는 [[인종 차별]]적 모욕을 한 [[크리스털 팰리스 FC|크리스털 팰리스]]의 서포터 매슈 심슨을 이른바 쿵푸 킥으로 가격해 8개월의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시즌에서 마지막 시즌 경기를 비기고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턴 FC|에버턴]]에 패배함으로써 리그와 FA컵에서 모두 2위에 머물렀다. 팬들은 퍼거슨 감독이 주요 선수들을 팔고 [[데이비드 베컴]] 및 [[폴 스콜스]], [[게리 네빌]], [[필 네빌]]과 같은 유스팀 선수들을 중용하는 방침에 격분하였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곧장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발탁되었고 놀라운 플레이를 선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995-96년에 더블을 안겼다. 잉글랜드 클럽으로서는 더블을 두 번 했던 팀은 없었기에 그 기록을 ‘더블 더블’(Double Doub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6-97년에는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에리크 칸토나]]는 30세의 나이로 축구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 트레블(1998-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