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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忠烈王, [[1236년]] ~ [[1308년]])은 [[고려]] 제25대 [[군주|국왕]](재위: [[1274년]] ~ [[1298년]], 복위:[[1299년]] ~ [[1308년]])이다. [[휘]]는 거(昛), 초명은 심(諶)·춘(賰), [[시호]]는 '''충렬경효대왕충렬광문선덕경효대왕'''(忠烈光文宣德景孝大王). [[고려 원종|원종]]과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金氏)의 맏아들이다.
 
[[원나라]]의 황제 [[원 세조|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으며, 이후 [[고려의 역대 국왕|고려 군주]]들은 [[원나라]]의 황녀나 종실의 딸을 정비 또는 후궁으로 맞이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그 결과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제후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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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한 그해 음력 6월 원종이 죽자 고려에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원나라 세력을 배경으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으나, 제후국이 되었다. 왕위에 즉위한 그해 원나라 [[원 세조|세조]]의 강요로 일본 정벌에 동로군(東路軍)을 파견하였다.
 
[[1277년]](충렬왕 3년) 원나라의 병마를 사육하기 위해 [[제주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했다. [[1280년]](충렬왕 6년) 정동행중서성이 설치되자 일본 정벌을 준비하기도 했다. [[1290년]](충렬왕 16년) 합단(哈丹)이 내침하여 강화로 천도했으며, [[김방경]](金方慶)의 활약으로 수차 왜구·여진의 침입을 격퇴할 수 있었다. [[1298년]] (충렬왕 24년) 태자([[충선왕]])에게 선위하고 '''광문선덕'''(光文宣德)의 존호를 받아 태상왕이 되었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