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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이철승]]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우익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한국전쟁 발발시 대한학도의용대 총본부 대장을 맡으며 휘하에 김영삼등을 두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제1공화국]] 정치인이자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소장 강경파의 한사람으로 당원의 이론무장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56년 미국 국무성 초청 국회의원 시찰단으로 민관식, 박영출, 정준모, 황성수와 함께 95일간 미국시찰을 하였다.일명 자유당의 입으로 불리며 황성수, 구철희와 주요 연설 논객으로 활동하며 [[서울신문]] 사장을 지내다가, [[4·19 혁명]] 의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 하였다. 사사오입 개헌에 관련하여 "이 얼마나 구차스러운 이론 이었으며, 이 얼마나 자유당이 수모받는 끔찍끔찍한 단어인가?" 라는 말을 남겼다.
남전노조 노동조합 운동을 함께 지원한 정대천은 사측에 노조를 인정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게 건의하던 중 "손도심의원의 중역진에대한 호통은 대단했으며 불의에 대한 절개는 나는새도 떨어뜨릴기개였다."라고 하였다.
1960년 4월 11일 국회 본회의 시작과 더불어 신상발언을 신청해 "육군 헌병관 이규광 준장과 그의 친형인 육본 경리감 이규동 준장이 막대한 국고를 유용하고, 부정 사실을 은폐하고, 부정 축재를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규동은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의 부친이다. 손의원은 이와 더불어 이들의 부정을 제보한 영관급 장교들의 투서와 증거서류 원본을 공개했다. 그 증거서류에는 거액의 예금통장과 각종 영수증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