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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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불만을 품은 오이라트는 정통제 14년(1449년) 명나라 변방인 [[산시 성 (산서성)|산시 성]] [[다퉁]](大同)으로 침입하였다.
 
이에 환관 왕진(王振)은 영종에게 직접 친정(親征)을 간청했으나 이부상서와 병부상서는 친정을 만류했다. 하지만 영종은 왕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오이라트족을 친정하고자 50만의 군대를 이끌고 북진했으나, 50만명의50만 명의 군사 중에는 문신(文臣), 귀족(貴族) 등 전쟁과 무관한 이들을 포함시켜 군대의 규모를 과시하였다.
 
전투에서 비정예군이 오이라트족에게 대패하였음에도 여러 군신들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왕진이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들의 패전소식은 북경(北京)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고, 남경(南京) 천도설이 나왔지만 병부시랑 우겸(于謙)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멸망한 송(宋,960 ~ 1279)의 예를 못보았느냐며 북경은 천리이므로 사수하여야 한다" 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조정을 안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