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그라쿠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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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기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190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명령으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에게 파견되어 로마군의 후방지원을 요청한 것이 첫 공식 업무로 기록된다. [[기원전 187년]]에는 [[호민관]]으로 선출되고 [[카토 (대)]]등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실각을 노리고 벌어진 '스키피오 재판'사건에서 용기있게 스키피오의 변호를 맡았다. 이때 스키피오는 그의 딸 [[코르넬리아 아프리카나]]를 그라쿠스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 그라쿠스는 로마 공화정의 공직에서 차근차근 길을 밟아 가는데 [[기원전 182년]]에는 [[안찰관행정관]], 2년후에는 [[법무관]]에 선출되었고 [[기원전 179년]]에는 전직법무관 자격으로 군단을 이끌고 [[히스파니아]]에서 벌어진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이 때의 공으로 그는 [[기원전 177년]]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집정관을 지낸후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약속대로 스키피오의 딸인 18세의 코르넬리아와 결혼했는데 무척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이었다. 이 결혼에서 유명한 그라쿠스 형제가 태어났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몇가지 중요한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정부가 발주하는 건설사업을 일부 업자가 독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 일정조건을 가진 해방노예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를 주는 법안등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