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3번째 줄:
제갈량은 마속과 왕평에게 정예병 2만 5000명을 주어 가정을 지키게 하고 [[고상]]에게는 군사 1만 명을 주어 가정 동북쪽의 열류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위연]]에게는 양평관을 가는 길목을 막아 가정 방어를 후원하게 했다.
 
그리고 [[조운 (촉한) |조운]]과 [[등지]]에게는 기곡 땅으로 가게 하고 [[강유]]를 선봉으로 삼아 야곡으로 진군했다. 한편 가정에 이르른 마속은 산 위에 군사를 주둔하자고 제안하지만 왕평은 산 길목에 영채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서로 의견 충돌이 벌어지자 마속은 결국 산 위에다가 영채를 세우고 왕평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산에서 10리쯤10리(4km)쯤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다.
 
가정 근처에 이르른 [[사마의]]는 장남 [[사마소]]를 보내 가정 일대를 탐지해 군사를 이끌고 마속이 주둔한 산을 포위했으며 [[장합]]을 보내 왕평을 막도록 했다. 결국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서 촉군은 위군에 투항하고 사마의가 산에 불을 놓자 마속은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산 서쪽으로 후퇴한다.
 
마속은 장합의 추격을 피해 30리쯤30리(12km)쯤 도망가다가 위연과 합류해 장합에 다시 맞섰으나 사마의와 사마소의 협공으로 다시 대패해 포위되던 중 왕평의 도움으로 탈출해 왕평과 위연은 열류성을 지키던 고정에게로 달아났다.
 
왕평과 위연, 고정은 군사를 모아 가정을 탈환하기로 했으나 위연과 고상은 위군의 기습으로 패하고 왕평이 이를 도우러 오나 곽회의 공격으로 패하고 만다. 사마의와 장합은 가정성을 점령했으며 양평관까지 함락될 것을 두려워한 위연은 양평, 고상과 함께 양평관으로 후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