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마립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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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년]] 봄,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을 습격하였다. 이해 음력 9월 [[하슬라]] 주민중 15세 이상 되는 자들을 징집해 이하에 성을 쌓았다. 마립간은 이후 방위체계 확립에 주력, [[469년]] 음력 4월의 수해 복구를 위해 음력 7월에 신라 전역을 순행했으며, [[470년]] [[삼년산성]]을, [[471년]] [[모로성]]을 쌓고, [[473년]] 명활성을 수리했으며, [[474년]] 일모, 사시, 광석, 답달, 구례, 좌라 등의 성을 쌓았다.
 
[[475년]] 음력 7월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치자, [[백제 개로왕|개로왕]]이 태자 [[백제 문주왕|문주]]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마립간이 백제에 원군을 보냈으나, 신라군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가 무너지고 개로왕을개로왕은 이미 살해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신라본기]]에는 [[474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구려본기]]나 [[백제본기]]에는 모두 475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본기의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476년]] 음력 6월 왜가 동쪽을 침범하자, 마립간이 덕지에게 명해 격퇴하게 하여 2백여를 죽이고 사로잡았다. [[477년]] 음력 5월에 또다시 크게 군을 일으켜 다섯 갈래로 쳐 왔으나 소득 없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