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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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부산포]]에는 내성과 외성이 있었는데, 내성(內城)인 본성(本城)은 현재 [[정공단]]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뒷산인 [[증산]]을 둘러싸고 있던 성이고, 자성대는 그 외성(外城)으로 쌓은 것인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선조 26년에 왜장 [[모리 데루모토|모리(毛利輝元) 부자가부자]]가 부산성을 헐고 왜성(倭城)으로 다시 쌓았다. 소서성·환산성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왜군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다. 왜군을 몰아낸 뒤에는 [[명나라]] 만세덕 휘하 군대가 머물러 '''만공대'''라고도 했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성과 사대문을 쌓고 관아를 고쳐 부산진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좌도수군첨절제사의 숙소로 쓰였다.
 
동서의 산을 따라 성벽으로 성곽을 두르고 바닷물을 끌여들여 참호를 20 미터 너비로 만들어 배가 바로 성벽에 닿도록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라는 명목으로 성을 철거하고 자성대 일대 해면은 매축되어 옛모습이 없어졌다.<ref name=mu>{{웹 인용|제목= 우리지역문화재|url=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23,00070000,21 |날짜= |저자=문화재청 고객지원센터 |출판사=문화재청 |확인일자=2012-09-17 }}</ref> 현재 남아있는 성지(城址)는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고 10 미터에 최저 1.5 미터이다.<ref name=bu>{{웹 인용|제목=문화재현황 |url= http://tour.busan.go.kr/board/view.busan?boardId=TOUR_ASSET&menuCd=DOM_000000105004002003&startPage=4&dataSid=9342&tabNum=1|날짜= |저자= |출판사=부산광역시 |확인일자=2012-09-17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