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아이 히로미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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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입단 첫 해인 1987년에는 2년 연속 3관왕을 차지한 선수로서 [[센트럴 리그]] 경기에 데뷔했지만 홈런과 타점 모두 과거 2년과는 다르게 급격히 떨어지면서 단 한 개의 타이틀도 없이 무관으로 그쳤다. 특히 [[시노즈카 가즈노리|시노즈카 도시오]], [[쇼다 고조]] 등과 수위타자 경쟁을 펼쳤지만 선두와의 2리 차로 리그 3위인 타율 3할 3푼 1리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인 8월 20일에는 장남이 탄생했다.
 
이듬해 1988년에는 시즌 32홈런과 95타점(모두 리그 2위), 그리고 승리 타점 19를 기록하면서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규정 타석을 채운 이후에는 타율 3할 대를 처음으로 밑돌았다. 1989년 시즌 종반에는 파죽지세로 116타점을 기록해 센트럴 리그 팀에 이적한 이후 처음으로 타이틀이 되는 타점왕타점왕을 타이틀을 획득하면서차지하면서 양대 리그에서 타점왕을 차지한 것은 사상 최초였다.
 
1990년 시즌 34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면서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에 석권했고석권했는데 양대 리그에서의 홈런왕도홈런왕을 차지한 것도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다음해인 1991년 2월에는 자신의 연봉과 관련한관련된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채대해서는 이에 불복하면서 일본인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연봉 조정을 신청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시즌 종반까지 3관왕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지만 3관왕을 차지하기 위해 홈런을 노렸던 타율이 좀처럼 오르지 못했고 최종전에서는 6타수 5안타라는 경이적인 성적으로 인해 한 번은 1위를 다투고 있는 [[후루타 아쓰야]]를 역전했지만 마지막에는 후루타가 최종전에서 안타를1타수 1안타를 기록해 결국 타격왕 타이틀을 놓쳐 홈런왕을 차지하는 것에만 그쳤다. 이 과정에서 후루타가 소속되어 있는소속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최종전에서는 승부를 피할 수 있어 1경기 6볼넷이라는6개의 볼넷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의야구 신기록을 수립했다.
 
199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를 탈퇴했고 정규 시즌에서는 작년에 비해 성적이 나빠지는 등 나이에 의한 체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고. 다음해인 1993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양대 리그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 같은 해 시즌 종료 후 도입된 지 얼마 안된 [[자유계약선수제도|자유계약]](FA)을 행사해 FA를 선언했다선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적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