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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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탈해 이사금]]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ref>김부식, 《[[삼국사기]]》, 1145년</ref> 《[[삼국유사]]》에도 거의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탈해왕]]이 김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후에 [[파사 이사금]]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알지에서 미추까지의 세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세대수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