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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여진족 토벌 ====
{{참고|동북 9성|별무반}}
[[1104년]](숙종 9) 음력 2월 동북면 병마사 [[임간]] 이 정주(定州)에서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무리하게 출정시켰다가 [[여진족|동여진]]과 싸워 크게 패하고 전사했으며 정주성의 함락 위기에 직면했는데, 척준경이 적장 둘을 베는 등 추격해오는 적의 기세를 꺾었기 때문에 [[여진족]]이 놀라 퇴각하고 남은 병사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척준경은 임간에게 무기와 갑옷입힌 말(介馬)을 얻은 뒤, 혼자 [[여진족]] 기병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여진족 기병대의 창에 베였으나 기병대 틈사이를 헤치고 적장 1명을 베어 죽였고 포로인 준민, 덕린과 함께 활로 각각 [[여진족]] 1명씩 쏘아 죽이자 [[여진족]] 군사들이 놀라 동요하였다.
 
척준경이 물러나려 하자 여진기병 100여명이 뒤를 쫒았는데 이때 숲으로 들어가 추격하는 [[여진족]] 장수 1명을 사살하였다. 성까지 퇴각하니 성벽에서 대상(大相) 인점이 또 적장 1명을 죽이자 지휘관을 잃은 여진족 군사들은 동요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고려군 전사자 다수 발생으로 패전의 책임을 지고 황유현, 송충, 왕공윤, 조규 등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파면되었으나, 척준경의 이름은 이 싸움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공으로 천우위 녹사 참군사(千牛衛錄事參軍事)가 되었다. 그해 [[3월]] [[윤관]]과 함께 다시 여진족 토벌에 나섰으나 부득이 패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