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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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의 기습 계획을 알아챈 왕윤은 동탁의 부하였던 [[호진]](胡軫) · [[서영 (후한)|서영]](徐榮) · [[양정 (후한)|양정]](陽定) 등에게 이각을 영격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참패하여 서영은 이각에게 토벌당하였고, 호진과 양정은 왕윤의 방만한 태도와 꾸중에 불만을 품고 신풍(新豊)까지 진군하다가 이각에게 배반하였다.
 
같은 해 5월, 장안은 이각군에게 포위되어 [[장안성 전투]]에서 패배해 8일 만에 함락당하였다. 이들은 왕윤에게 동탁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면서 꾸짖고, 왕윤의 형으로 외지에서 벼슬하던 왕굉(王宏)과 송익(宋翼)을 장안으로 불러들여 6월 7일 왕윤과 함께 처형했다. 이각은 왕윤을 여덟 갈래로 찢어 죽였고, 여포 일당을 장안에서 내쫓았다.
 
같은 해 9월, 거기장군(車騎將軍) · 개부(開府) · 영사예교위(領司隷校尉) · 가절(假節) · 지양후(池陽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