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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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정변과 하야 ==
 
1924년 제2차 직봉전쟁이 발발하여 직계 군벌과 봉계 군벌은 20만 병력을 동원해서 전투를 벌였다. 이때 펑위샹은 적인 봉계의 장쭤린과[[장쭤린]](張作霖)과 짜고, 베이징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펑은 차오쿤을 감금하고 하야를 강요했고, 차오는 이를 받아들여 하야했다. 이때 차오의 동생 차오루이는 가택연금중 자살했다. 2년후 1926년 장쭤린과 [[우페이푸]]간의 연합이 형성되어 펑위샹을 격파하고 차오쿤을 구출하였다. 이후 바오딩에 머물다가, [[북벌 (국민당)|국민당의 북벌]]로 인해 북양군벌이 몰락하고, 국민당이 중국 전토를 평정하자, 톈진으로 가서 은거했다.
 
1937년 [[중일 전쟁|중일전쟁]] 개시 이후, 일본은 텐진과 화북 전역을 점령하여 괴뢰정부를 세우고, 은퇴중인 그를 허수아비 수장으로 세우려고 했으나, 차오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톈진에서 76세의 나이로 자연사하였다. 그가 일본의 제의를 거절한 것을 높이 평가하여, 북벌기간중 그와 대립했던 [[장제스]](蔣介石)의 국민정부는 그의 사후 일급상장(一級上將:대한민국의 대장에 해당)을 추증하였다.
 
[[분류:중화민국의 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