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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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그림= Arturo Toscanini 1908.png
|그림제목그림설명=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908년)
|출생일= [[1867년]] [[3월 25일]]
|출생지= {{국기나라국기|이탈리아 왕국}}<br />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
|사망지= {{국기나라국기|미국}} [[뉴욕 주]] [[뉴욕]]
|사망일= [[1957년]]{{사망일과 [[1월 16일]]나이|1957|1|16|186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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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국기나라|이탈리아 왕국}} → {{국기나라국기|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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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파르마 왕립 음악원왕립음악원
|직업= [[지휘자]],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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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년]] [[3월 25일]] ~ [[1957년]] [[1월 16일]])는 [[이탈리아]]에서 출신의태어난 [[미국]] [[지휘자]], 음악가이다[[첼리스트]]이다. [[1898년]] 밀라노 스칼라 좌의 수석 지휘자, [[19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지휘자, [[1926년]] 뉴욕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거쳐, [[1937년]] NBC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이다. 심한 근시안인 그는 악보 전부를 정확하게 암기하기도 하였다. 명쾌한 리듬과 강렬한 음량 증감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연주 양식을 확립시켰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년]] [[3월 25일]] ~ [[1957년]] [[1월 16일]])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지휘자, 음악가이다. [[1898년]] 밀라노 스칼라 좌의 수석 지휘자, [[19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지휘자, [[1926년]] 뉴욕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거쳐, [[1937년]] NBC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이다. 심한 근시안인 그는 악보 전부를 정확하게 암기하기도 하였다. 명쾌한 리듬과 강렬한 음량 증감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연주 양식을 확립시켰다.
 
독일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푸르트뱅글러]]와 함께 지휘자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그는 극히 정확한 템포와 치밀한 합주, 박력있고 신선한 연주로 칸텔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카라얀]], [[리카르도 무티|무티]], [[클라우디오 아바도|아바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줄리니]] 등 후대 지휘자들의 해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 생애 ==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9살 때 파르마 왕립 음악원에서왕립음악원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하고, [[1885년]] 순회 가극단의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오페라단 첼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였는데, [[1886년]] 리우데자네이루 가극장의 첼로 연주자였을 때, <아이다>를 대신 지휘하여 지휘자의 대타로 잠시 지휘봉을 잡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휘자가 되었다. 토리노 오페라 극장, 파르마 오페라 극장 등을 거쳐 30대의 나이로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 '밀라노 라 스칼라'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 극장에 있으면서 토스카니니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음악회의 악습과 페단을 모두 철폐하는 개혁을 하는 한편, 공연의 질을 높이고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열성을 쏟았다. 특히 작곡가 푸치니와의 오랜 친구 사이로 《투란도트》를 비롯한 그의 많은 걸작들을 초연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도 있으면서 [[엔리코 카루소]], [[:en:Antonio Scotti|안토니오 스코티]], [[넬리 멜바]]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공연을 하였으며, 1930년대에 들어서는 파쇼정권이 이탈리아에 들어서며 토스카니니는 무솔리니와 대립하게 된다.
 
공연을 보러 온 [[베니토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 찬가를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결국 무솔리니가 고집을 꺾었다는 일화도 있다.<ref name="영일1">[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410&yy=2009 영남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 봇이 붙인 제목 -->]</ref>
 
파쇼로부터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미국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NBC]]는 1937년에[[1937년]]에 그를 위해 각 악기들의 비르투오소들만 모인 올스타 오케스트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일반 연주회는 물론, 라디오와 TV를 통한 폭넓은 방송공연까지도 하였다. 토스카니니는 NBC 심포니와 정열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던 중 [[1954년]] 공연에서 가벼운 실신을 일으키고 은퇴하였다. [[1957년]] 1월 16일 만 89세로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ref name="영일1"/>
1957년 1월 16일 만 89세로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ref name="영일1"/>
 
== 기타 ==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악보를 찢는 등 과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지휘봉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 손수건이나 윗옷을 찢기도 했다. 틀린 음이나 어설픈 음을 발견하면 '노! 노!'라고 불같이 호령을 하여 그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었다 한다. 단원들은 그런 그를 '토스카노노'라는 별명을별명으로 불렀다 한다.<ref name="영일1"/>
연주 중 화가 나면 시계나 집기를 던지는 일이 있었으므로 토스카니니의 한 팬은 그에게 연습때 차는 시계와 연주때 차는 금시계를 함께 선물하면서 연습용과 연주용이라는 표시를 했다 한다.
== 같이 보기 ==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오토 클렘페퍼클렘페러]]
* [[브루노 발터]]
* [[에리히 클라이버]]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987&path=|183|194|&leafId=232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DEFAULTSORT기본정렬:토스카니니, 아르투로}}
{{토막글|음악}}
{{글로벌}}
[[분류:1867년 태어남]]
[[분류:1957년 죽음]]
[[분류:파르마 출신]]
[[분류:이탈리아의 지휘자]]
[[분류:이탈리아계 미국인]]
[[분류:이탈리아의 음악가]]
[[분류: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분류:파르마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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