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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
성령은 삼위일체 세 위격의 하나로서, 삼위의 구분은 구원과 관련된 사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성령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한 해석은 무궁무진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성한 힘 혹은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와 같은 이미지로 보고 있으며 인간의 선량한 행동과도 같은 것이 모두 이 성령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기독교에서는 보고 있다.
* 성부: 구원을 계획하신다.
* 성자: 구원에 필요한 일을 완수하신다. 성자의 육체적 현현(顯現)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 성령: 성자가 완수한 공효를 구원받을 사람에게 적용시키신다.
 
예를 들면, 신약성서는 분명히 말하자면 하느님이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전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구약성서의 모세의 십계 같은 것은 하느님이 직접 인간에게 쓴 글).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령이 성서의 저자들을 영적으로 감화시킴으로써 집필을 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그 집필을 관철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자면 신약성서 역시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이 하느님의 위격이 아니라고 할 시, 특히 신약성서의 종교적 권위성은 사라져 버린다.
 
단, 성령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는 성서에서는 애매한 표현과 설명 밖에 없기 때문에, 위에 쓰여져 있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해석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성령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지에 대해서는 종파마다 끊임없이 다루어진 것이 초기 및 중기 기독교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본 항목에서는 기독교의 최대 교파인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 종파에 의한 성령에 대한 해석만 집필한다.
===인간관에 대한 영향력===
위의 설명대로, 성령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된다’라는 생각에서 필수 불가결이 된 개념이다. 특히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성령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예정대로 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나 행동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로, 기독교권의 문학이나 미술로 대표되는 예술 활동에서는 [[종교 개혁]] 이전과 이후로 그리스도인이 인간성을 바라보고 파악하는 방법이 정반대로 나뉘어진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애매한표현}} 확실히, 프랑스 동부(리옹)에서 스위스 서부(제네바) 또는 잉글랜드 지역에서 종교 개혁이 인간관에 끼친 영향력이 강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르네상스에서의 인문주의 활동이 기독교에게 준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가톨릭권(이탈리아, 남아메리카)의 사람들은 대체로 느긋하고 활발한 경향이 있으며, 개신교권(독일이나 북유럽 제국)의 사람들은 성실하고 음침한 경향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 경향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가톨릭권에서는 성령이 인간을 움직여주므로 개인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개신교에서는 성령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성령의 시대===
또한,기독교 신학 유파 중 [[세대주의]]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하느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시대로 ‘성부의 시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여 승천할 때까지의 시대를 ‘성자의 시대’, 그리고 그리스도가 승천한 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를 ‘성령의 시대’라고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나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직접 인간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그리스도도 이미 승천한 지 오래이므로, 다음은 성령만이 직접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또한 복음주의파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의 종말에 있어서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 다시 성부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