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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후경 토벌이후 건강에 주둔하던 왕승변은 [[555년]] [[북제]](北齊)의 압력에 정양후(貞陽侯) 소연명(蕭淵明)을 맞이하여 옹립하였으나 [[진패선]](陳覇先)이 이에 반대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승변을 죽이고 정양후을 퇴위시킨 뒤, 원제의 아들 진안왕(陳安王) 소방지(蕭方智;[[경제]])을 옹립했다. 그리고 [[557년]] 경제는 [[진패선]]에게 선양하여 [[진 (남조)|진]]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다.
한편 양양에 있던 [[소찬]]은 서위의 손에 의해 강릉에서 즉위하여 [[후량 (남조)|후량]](後梁)의 [[선제]](宣帝)가 되었다. 물론 괴뢰정권이었기에 [[후주]](後主) 소종에 이르는 3대까지 이어지다 [[수나라]]에 병합된 후 사라졌다.
[[파일:北周・北斉・陳・後梁.PNG|thumb|right|280px|[[후량 (남조)|후량]]의 위치]]
한편 양양에 있던 [[소찬]]은 서위의 손에 의해 강릉에서 즉위하여 [[후량 (남조)|후량]](後梁)의 [[선제]](宣帝)가 되었다. 물론 괴뢰정권이었기에 [[후주]](後主) 소종에 이르는 3대까지 이어지다 [[수나라]]에 병합된 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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