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모토 신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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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웨이 레드삭스
* [[야마하]]
* [[주니치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08 ~ 2009)
* [[LG 트윈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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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아마추어 시절 ===
[[노무라 가쓰야]]의 출신 고등학교인 교토 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인의 사토 공무점에 입사하였지만 이 후 팀의 해체로 인해 사회인 시대에만 5개의 팀을 전전하다가 [[야마하]]에 입단하면서 활약했다. 이 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는 [[주니치
=== 프로 입단 후 ===
==== 주니치
입단 후 2년 간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다른 선발 투수의 부진으로 인해 찬스를 잡아 프로 3년째인 시즌에 있어 선발로서의 두각을 나타낸다. 30세 가까운 나이에 시속 150km/h의 가까운 속구를 던지게 되면서 높은 탈삼진률을 기록했다. 이 해 [[오사카 긴테쓰
[[2004년]]에는 전년도에 선발 투수였지만 체력이 부족할 정도로 5회에 들어서는 강판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 해부터 중간 계투로서 전념하게 되었다. 중간 계투의 오른팔로서 개인 최다인 63경기에 등판하여 2.03의 평균자책점, 9승 4패라는 성적을 끌어 올리기도 했고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한층 더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선발 투수진의 부진도 있었지만, 전반기에서만 중간 계투로서 10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부상으로 후반기에 전력을 이탈했지만 그런데도 57경기에 등판하여 3.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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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대 ====
이듬해 [[2008년]]에는 FA로 주니치에 이적한 [[와다 가즈히로]]의 보상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 주니치의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인적 보상으로 이적한 선수가 되었다.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더 바랄 나위 없는 선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라고 말해 당시 중간 계투진의 과제였던 만큼 실적을 근거로 하여 높게 평가를 했고, 오카모토 자신도 이에 관해서는 “자신에게 있어서 플러스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등번호는 주니치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12번으로 정해졌다. 이적 직후에는 세이부의 약점이기도 한 중간 계투진의 강화에 성공하면서 5월의 중순 무렵까지는 평균자책점이 1점대의 활약을 하면서 [[2008년 하계 올림픽|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야구 일본 대표팀]]의 1차 후보로 선수 발탁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라쿠텐]]의 [[야마사키 다케시]], [[오릭스
이듬해인 [[2009년]] [[2월 4일]], 등록명을 발음과 똑같은 '''{{lang|ja|岡本真也}}'''(동음)에서 '''{{lang|ja|岡本慎也}}'''(동음)로 변경했고, 정규 시즌에서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6월 27일]]에 2군으로 강등되어 그 후에는 단 한 번도 1군으로 복귀하는 일이 없이 [[10월 2일]]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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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 [[주니치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08년 ~ 2009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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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2001년]]
|rowspan="7" style="text-align:center"|[[주니치
|3||0||0||0||0||0||0||0||--||----||22||6.0||0||0||5||0||1||6||0||0||0||0||0.00||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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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본의 야구 선수]]
[[분류:일본 프로 야구 투수]]
[[분류:주니치
[[분류: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분류: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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