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노 히데유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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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nowiki></nowiki>
'''선수 경력'''
*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1987 ~ 1994)
* [[요미우리 자이언츠]](1995 ~ 1997)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1998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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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유명 사립고등학교로부터 입학 권유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립 학교인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를 지원한 끝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하계 대회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가나가와현 대회에서 팀은 4차전에서 패했고 고교 졸업 후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1학년 후배인 [[요다 쓰요시]]가 있다). 도토대학 리그에서 통산 62경기에 등판하여 32승 17패, 평균자책점 1.83, 탈삼진 282개를 기록했고 최고 수훈선수 1차례, 최우수 투수 세 차례, 베스트 나인에 세 차례나 선정된 적도 있었다. 4학년 때 추계 대회에서는 9승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도토대학 리그의 타이 기록이었다.
 
198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 등 3개 구단이 1순위로 지명했는데 아와노는 자신이 희망하는 구단이 요미우리와 다이요라고 말했지만 교섭권을 획득한 구단은 간토 지역 출신인 아와노에게 있어서 가장 인연이 없던 긴테쓰였다. 이 때 아시아 대학에서는 드래프트의 결과를 기다리는 아와노를 TV로 생중계하고 있어 긴테쓰의 확정이 정해진 순간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와노와 주변의 재학생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어수선한 모습이 TV 화면에 비춰졌다. 결국 아와노는 “지명된 구단으로 간다”라고 말하는 등 대학 선배인 [[오이시 다이지로]]가 소속되어 있는 긴테쓰의 입단을 받아들였다. 아와노를 제외시킨 요미우리는 [[기다 마사오]], 요코하마는 [[도모리 유이]]를 재지명하여 영입했다.
 
===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 시절 ===
==== 1987년 ~ 1988년 ====
프로 1년차인 1987년에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이는 등 시즌 15승과 양대 리그 최다인 201개의 탈삼진과 249.2 이닝을 기록했다. 동갑내기이자 같은 1986년 드래프트 1순위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한 [[니시자키 유키히로]]와 함께 [[일본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아와노는 32경기에 등판하면서 15승 12패,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했는데 니시자키는 30경기에 등판하면서 15승 7패, 평균자책점 2.89을 기록하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의 훌륭한 성적을 남겼지만 결과는 아와노가 신인왕을 획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와노와 니시자키는 모두 ‘트랜디에이스’라고 불리면서 특히 여성팬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었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1988년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는 등 14승을 기록했고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2차전)에 선발 등판해 3이닝을 무안타와 무자책점, 탈삼진 3개를 기록했다.<ref>1회말에 고졸 신인으로 선발 출전한 [[다쓰나미 가즈요시]]를 외야플라이로 잡아 [[가도타 히로미쓰]]가 처리했다.</ref>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을 건 [[가와사키 구장]]에서 열린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와의 [[더블헤더]], 일명 ‘[[10월 19일의 비극]]’이라고 불린 경기에서는 두 경기 모두 [[요시이 마사토]]의 뒤를 이어 연속투구를 했다. 이 경기를 앞둔 이틀 전에 아와노는 [[오릭스 버팔로스버펄로스|한큐 브레이브스]]전에서 완투를 하였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더블헤더 1차전에서는 9회에 1점을 리드하고 있는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모리타 요시히코]]를 삼진으로 처리해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 때 아와노는 모자를 움켜쥐면서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2차전에서는 1점을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다카자와 히데아키]]에게 통한의 동점 홈런을 허용했다. 무사 1루·2루 상황에서 2루 주자인 [[후루카와 신이치]]를 견제구로 아웃시켰지만 롯데 감독인 [[아리토 미치요]]가 심판에게 항의하면서 약 9분 동안 경기가 중단되었다. 이것의 영향으로 2차전은 무승부로 끝나면서 긴테쓰는 리그 우승을 놓쳤다. 또한 이 경기에서 아와노로서는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경기로 비춰졌지만 원래는 롯데를 자신있는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1988년에는 4승 1패, 다음 해인 1989년에는 4승 무패의 성적을 남기고 있어 통산 성적에서도 긴테쓰 시절의 통산 67승 중에 21승은 롯데와의 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 1989년 ~ 19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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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주로 중간 계투로서 50경기에 등판하는 등 부활을 이뤄 일명 ‘[[곤도 히로시|곤도]] 재생 공장’의 제1호로 불렸다. [[199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듬해 1999년 8월 3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6년만에 선발승을 기록했다.<ref>1993년 4월 14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이후의 선발승이었다.</ref>
 
2000년 10월에는 방출 통보를 받자마자 그대로 현역 생활을 은퇴했고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3개 구단에서 모두 소속했다. 그리고 3개 구단에서 모두 우승 경험을 했고 일본 시리즈에 출전까지 했는데 3개 구단에서의 일본 시리즈 출전은 최다 기록이지만<ref>그 밖에 [[와코 도모오]]([[지바 롯데 마린스|다이마이]]·[[한신 타이거스|한신]]·[[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나가오 야스노리]]([[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긴테쓰·한신), [[오미야 다쓰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주니치]]·세이부), [[나카오 다카요시]](주니치·요미우리·세이부), [[구도 기미야스]](세이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요미우리), [[나카지마 사토시]]([[오릭스 버팔로스버펄로스|오릭스]]·세이부·닛폰햄) 등 6명이다.</ref> 드래프트에 지명된 모든 구단에서 출전한 것은 아와노가 유일하다.
 
=== 그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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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경력 ==
*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1987년 ~ 1994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1995년 ~ 1997년)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1998년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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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1987년]]
|rowspan="8" style="text-align: center;"|[[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긴테쓰]]
|32||30||22||3||4||15||12||0||--||.556||'''1002'''||'''249.2'''||211||27||58||2||4||'''201'''||3||0||86||80||2.88||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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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본의 야구 선수]]
[[분류:일본 프로 야구 투수]]
[[분류: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 선수]]
[[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분류: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