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원 비상 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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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시초는 [[기원전 123년과 122년]]에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친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Gaius Gracchus)를 지목하게 되었다. 그들은 '공화정의 국제를 지키기 위하여' 시민의 권리를 일시 정지 시킨 후 그의 지지자 3,250명 이상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은 원로원 측이 불리하게 될 때에는 군대라도 동원하여 정치·사회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전례에 없었던 무력 폭력의 한 예를 남기게 되었다.
 
[[기원전 100년]], 호민관 [[사투르니누스]](Lucius Appuleius Saturninus)와 [[글라우키아]](Gaius Servilius Glaucia)역시 원로원 최종권고에 의해 제압당하고 말았다.
 
[[기원전 62년]], 원로원 의원이자 급진 개혁파였던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등에 대해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시켰고, 로마에 상주해있던 법무관이나 현직 원로원 의원 등 5명이 체포되고 처형된 뒤 카틸리나를 3,000명의 추종자와 함께 학살해버렸다.
 
== 원로원 최종권고의 종말 ==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도[[카이사르]]역시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법인 원로원 최종 권고에 의해서 반역자로 낙인찍히지만, 카이사르는 [[카이사르의 내전|내전]]에서 승리하여, 원로원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하고 그 뒤, 원로원 최종권고는 사라지게 된다.
 
[[분류:로마 공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