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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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임지자성'''(任持自性)은 자신만의 [[자성 (불교)|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고, '''궤생물해'''(軌生物解)는 해당 사물에 대한 [[요별|앎]][解, 인식, 요해, 요별, 지식]을 낳게 하는 궤범이라는 뜻이다.{{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p=[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4 4 / 1397]}} [[궤범]]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작용하는 규범, 즉 법칙적 관계를 뜻하는데,{{sfn|황욱|1999|p=26}} '궤생물해'는 해당 [[사물 (불교)|사물]](법)이 다른 [[사물 (불교)|사물]](법)들에 대해 가지는 법칙적 관계가 해당 [[사물 (불교)|사물]](법)을 [[앎 (불교)|앎]][解]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5온]] 중의 하나인 [[수온]], 즉 [[마음작용]] 중의 하나인 [[수 (마음작용)|수]](受)는 [[고수 (3수)|고수]](苦受){{.cw}}[[낙수 (3수)|낙수]](樂受){{.cw}}[[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로 나뉘는데, [[3수]]는 다음과 같이 다른 [[마음작용]]인 [[촉 (마음작용)|촉]](觸)과 [[욕 (마음작용)|욕]](欲)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때 아주 명료하게 이해된다.
{{인용문|云何受蘊。謂三領納。一苦二樂三不苦不樂。
<br>樂謂滅時有和合欲。
<br>苦謂生時有乖離欲。
<br>不苦不樂謂無二欲。
<br><br>
[[수온]](受蘊)이란 무엇인가? [지각대상에 대한] 3가지의 느낌[領納, 지각]을 말하는데,
첫 번째는 괴롭다는 느낌[苦受]이고,
두 번째는 즐겁다는 느낌[樂受]이고,
세 번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이다.
<br>[[즐겁다는 느낌]][樂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사라질 때 [즉, 지각대상과 헤어질 때, 그것과] 다시 [[촉 (마음작용)|만나고]] 싶어하는 [[욕 (마음작용)|욕구]][和合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br>[[괴롭다는 느낌]][苦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생겨날 때 [즉, 지각대상과 만날 때, 그것과] [[촉 (마음작용)|떨어지고]] 싶어하는 [[욕 (마음작용)|욕구]][乖離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br>[[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이란 이들 2가지 [[욕 (마음작용)|욕구]][欲]가 없는 것을 말한다.
|세친 조, 현장 한역. 《[[대승오온론]]》, T31, p. 848.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8b26 한문본]}}
 
==처자상과 사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