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클리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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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리우스는 빛나는 군사적인 업적 외에도 여러가지 문화적인 업적을 낳았다. 풍전등화 상태였던 동로마 제국이 그가 창안하고 정착한 군사·행정조직 덕분으로 이후 800년이나 더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중세 동로마 제국의 중추가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헤라클리우스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는 제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전환했다. 어차피 주민 대다수는 라틴어를 모르고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궁정에서도 그리스적인 개혁을 벌여서 이전까지 황제의 공식 직함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Augustus'')였으나 헤라클리우스의 개혁으로 황제의 직함은 그리스어로 [[왕|제왕]]을 뜻하는 '''바실레우스'''(''Βασιλεύς'')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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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575년 태어남]]
[[분류:641년 죽음]]
[[분류: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동로마 제국의 황제]]
[[분류:로마 제국의 집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