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4세 드 툴루즈 백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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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가 예루살렘 왕에 추대되었으나, 그리스도가 죽은 땅에 왕이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그 때문에 고드프루아가 왕으로 선출되었으나, 고드프루아도 왕으로 불리길 싫어해 ''성묘의 수호자'' 란 명칭을 썼다. 그 후 [[아스칼론]] 전투에 참가했으나, 아스칼론 점령을 두고 고드프루아와 다툼을 벌였기에 이곳을 공략하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십자군과 결별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지냈다. 여기서 [[1101년]] 십자군과 합류했으나, [[아나톨리아]]에서 패배했다.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돌아가 황제 [[알렉시우스 1세|알렉시우스 콤네누스]]의 원조을 받아 트리폴리 공략을 목표로 삼았으나, 원정 도중 병사했다.
 
그의 조카인 기욤 주르당이 포위를 계속했으나, 그후그 후 베르트랑이 그를 대신했고, [[1109년]] 트리폴리을 함락시켜, [[트리폴리 백국]]을 세웠다. 그의 휘하에 있던 레이몽드 드 아길레스(Raimundus de Aguilers)가 제1차 십자군의 기록을 레몽의 관점으로 기술하였다.
 
{{십자군 중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