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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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도'''(尹東度, [[1707년]] ~ [[1768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사도세자]]에게 호의적이었으며 당색으로는 소론 계열이었다. 호는 남애, 본관은 [[파주시|파평]]이다. 시호는 정문이다.
 
[[1745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그뒤그 뒤 [[대사간]], [[호조]] [[판서]] 등을 지내다가 그 후에 승진하여 [[의정부]][[우의정]]에 올랐다. 한때는 [[윤구연]] 등에 대한 처벌을 반대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뒤에 [[영의정]]이 되었다.
 
[[나경언]]의 벽서 사건 때 벽서 사건의 주모자로 안성저 사람을 지목했고, 안성 사람들은 윤동도의 아들 윤광유(尹光裕)가 사주했다고 지목했다.<ref name="이덕일1">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휴머니스트 2004) 73페이지</ref> 이 소식을 들은 윤동도가 사임 표하였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누명임을 알고 윤동도에게 수서를 내려 위로했다. 세자는 안성저 사람의 자백이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