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 전투 (151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59번째 줄:
 
==결과==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교황군을 격퇴하고 라벤나을 함락시켰다. 루이 12세의 전략목적은 달성되었으나 용장 가스통의 죽음은 프랑스군 전체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만큼 뛰어난 지휘관은 더이상 프랑스군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맞아 루이 12세는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패배로 낙담해 있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프랑스군이 더이상 진격하지 않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율리우스 2세는 공회의를 개최하여 자신이 정당한 교회의 지배자라는것을 모두에게 확인시켰다. 그 때문에 프랑스는 주위 국가 모두을 적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병사를 철수 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 율리우스 2세는 로마의 권위를 지켰다.
 
라벤나 전투는 중세와 이별하고 보다 조직적이고 기동력이 있는 전투가 주축이 되었다. 대량으로 배치한 대포가 승리을 갈랐기에 중세의 전장을 장식했던 중장기병의 돌격은 이후 전장에서 사라졌다. 또한 전쟁사는 종교개혁을 거쳐 고도의 전술이 요구하는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라벤나 전투는 구시대와 신시대을 연결하는 가교적인 역할을 한 전투였던 것이다.
 
==참고 및 참조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