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불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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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불린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불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비로 즉위했다.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졌다. 대신 왕은 앤 불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앤 볼린의불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은 [[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불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불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불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심지어 앤 불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불린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본래 앤은 화형당하기로 판결되었으나 나중에 헨리 8세에 의하여 참수로 감형되었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앤의 사형 집행은 그때 당시 참수에 흔히 쓰이던 도끼 대신 잘 드는 칼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고 왕은 앤의 참수를 위해 프랑스에서 칼을 쓰는 노련한 사람을 특별히 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