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 교육의 확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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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라이의 영향을 프랑스보다 늦게 받은 영국은 프랑스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영국에서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 이탈리아의 새로운 생각은 반감을 사긴 했다. 하지만 영국의 문예부흥운동이 프랑스보다 더 진전된 상태였고, 영국은 거리상으로도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영국인들은 이탈리아풍의 기사교육이 외래문화로 받아들여진다기보다는 완전히 외국의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영국사회에 그다지 심각한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고, 그에 대한 반감도 프랑스보다 덜하였다.
 
이탈리아의 기사 교육이 영국 사회에 일으킨 즉각적인 효과는 신사교육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그 내용도 당대 문법학교에서 행해지던 것보다 훨씬 일상생활에 가까운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의 과학이 영국 교육계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러한 이탈리아의 과학을 삶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즉, 지상에서의 인간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과학을 수단으로 보게 된 것이다. 베이컨의 철학은 이탈리아 사상의 일면만을 발달시켰듯이 학교에서도 이탈리아의 사상적 인문주의를 현실적 고려 내에서만 받아들였다. 이 베이컨 철학은 이전의 수세기 동안 유럽문화를 지배한 인문주의가 종교와 결합해 내세우는 내세 지향적 가치관에 도전할 무기가 되었으며, 문예부흥운동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된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세속적 가치관이 다시 한 번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 같이 보기 ==
* [[서양 근세의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