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알자스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새 문서: '''위그'''(Hugh, 855년 - 895년)는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군주로, 로트링겐의 왕 로타르 2세의 사생아였다. 865년 ...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위그'''(Hugh, [[855년]] - [[895년]])는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군주로, [[로트링겐]]의 왕 [[로타르 2세]]의 사생아였다. [[로타르 1세]] 가계의 마지막 직계 남성이었다. [[로타르 2세]]와 [[발트라다]]의 아들이다.
 
[[토이드베르가]]에게서 아들이 없던 [[로타르 2세]]는 [[발트라다]]에게서 아들 위그와 딸 기셀라, 베르타를 얻었다. [[로타르 2세]]는 발트라다가 자신의 아들을 낳아주자 왕비인 토이드베르가와 이혼하려고 노력하였다.
[[865년]] 아버지 [[로타르 2세]]는 그를 알사스(Alsace)의 공작에 임명했다. 아버지 [[로타르 2세]]는 그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그를 낳은 생모 [[발트라다]]와 결혼을 하려 하였으나 [[869년]]에 사망했다. 그해 [[동프랑크]]의 [[독일인 루트비히]]와 [[서프랑크]]의 [[대머리왕 카를]]은 군사를 이끌고 [[로트링겐]]에 쳐들어와 혼인의 무효와 함께 위그를 사생아로 논정짓고 추방했다.
 
[[865년]] 아버지 [[로타르 2세]]는 그를 [[알사스]](Alsace)의 공작에 임명했다. 아버지 [[로타르 2세]]는 그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그를 낳은 생모 [[발트라다]]와 결혼을 하려 하였으나 [[869년]]에 사망했다. 그해 [[동프랑크]]의 [[독일인 루트비히]]와 [[서프랑크]]의 [[대머리왕 카를]]은 군사를 이끌고 [[로트링겐]]에 쳐들어와 혼인의 무효와 함께 위그를 사생아로 논정짓고 추방했다.
그는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왕위를 되찾으려 했다. 877년과 878년, 880년 여러번 부왕의 영지를 되찾으려 기도했으나, 그 때마다 실패하였다. 885년 [[뚱보왕 카를]]에 의해 벙어리가 된 뒤 [[세인트 갈 수도원]]에 감금되었다가 다시 포에른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왕위를 되찾으려 했다. 877년과 878년, 880년 여러번 부왕의 영지를 되찾으려 기도했으나, 그때마다 실패하였다. [[877년]] [[루트비히 2세]]가 죽은 뒤 그는 [[로타르 1세]]의 직계후손임을 내세워 [[이탈리아]]의 왕위를 요구하였지만 실패하였다. [[879년]] [[서프랑크의 루이 2세]]가 사망하자 [[서프랑크]]의 왕위를 차지하려 하였으나 [[루트비히 3세]]가 보낸 군사들이 [[루이 3세]]와 [[샤를로망]]을 보호하였으므로 실패했다. 883년 휴의 누이인 기셀라가 [[프리슬란트]]의 후작 [[고드프리]]와 결혼, 이를 이용하여 다시 아버지의 영지를 탈환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885년 [[뚱보왕 카를]]과의 전투 중 체포, [[프리슬란트 후작 고드프리]]는 살해되고 그는 벙어리가 된 뒤 [[세인트 갈 수도원]]에 감금되었다가 다시 포에른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 관련 항목 ==
* [[로타르 2세]]
* [[프로방스의 샤를]]
 
[[분류:카롤링거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