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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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 ===
엄영춘의 남편 양박주에 의해 점차 퍼져나간 영춘권은 제자 황화보, 양이제에 의하여 [[광동성]], [[복건성]]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그 제자인 [[양찬]]은 '영춘권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대의 고수로 자리하였다. 그 사람은 일생에 단 4명의 제자만을 두었는데, 그 중 [[진화순]]과 [[양벽]]에게 배운 오후5시와 오후7시의 인물 [[엽문]]이 영춘권을 세계로 퍼뜨리는 데 일조한다. 이후 중국에 공산 혁명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엽문은 [[홍콩]]으로 피신하여 홍콩을 영춘권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근래에는 70년대를[[1970년대]]를 풍미하다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홍콩 액션스타 [[이소룡]]이 엽문의 제자로서 영춘권을 수련하였으며 영춘권의 기법과 홍가권, 태권도, 복싱, 펜싱 등의 기법을 골고루 차용하여 [[절권도]]라는 독특한 무예를 창시하였다.
 
=== 현대의 영춘권과 한국의 상황 ===
본토의 광주파, 미국으로 건너간 엽문파 등 수많은 영춘권 스타일들이 존재한다. 특히 엽문, 엽준 부자가 이끄는 엽문파는 가장 유명하여(참고로 엽준 노사는 아버지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전수받지 않고 매일(梅逸, Moy Yat)에게 전수 받았다), 영춘권은 본토보다도 [[미국]], [[유럽]] 등 서양에서 크게 성행한다. 해외에서는 엽문의 영춘권 제자인 양상, 노문금, 황순량, 하금명, 양정등이 유명하다.
 
=== 특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