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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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숭'''(曹嵩, ?[[137년]] ~ [[193년]])은 [[중국]] [[후한]] 말 [[위 (삼국)|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조조]](曹操)의 아버지이다. 자는 거고(巨高)이다. 일설에는 하후씨라는 설이 있으며 [[하후돈]](夏侯惇)의 숙부라는 설이 있다.{{출처}}
 
== 생애 ==
 
중상시 [[조등]](曹騰)이 환관이라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숭을 양자로 삼았다. 조숭은 조등의 작위를 이어받아 태위(太尉)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무제기〉에 인용된《조만전(曹滿傳)》의 일설에 의하면 원래의 성은 하후(夏侯)씨였으나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성을 조씨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이야기가 있다.<ref> 〈무제기〉에 인용된《조만전(曹滿傳)》</ref>조숭은 환관에게 뇌물을 바치고 서원전(西園錢) 1억 전을 바쳐 태위까지 올랐다고 전해지나, 《[[후한서]]》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조조의 거병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조조가 대세력을 이루자, [[193년]] 일가친척과 함께 진류로 가던 중 [[도겸]](陶謙)을 만나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도겸의 부하인 [[장개]](張闓)로 하여금 그를 호위하게 했으나, 장개는 본래 황건적이었기 때문에 금품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혹은 조숭일가로부터 홀대를 당해 앙심을 품고-, 결국 조숭 일가를 말살한다. 이 일로 인하여 조조가 서주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그러다가 장개가 유비로부터 쫓겨나고 방황하던 도중, 조조의 부하장수인 [[하후연]]이 장개를 찾아 죽임으로써, 하후연은 그의 형인 [[하후돈]]과 같은 높은 관직에 오르고, 조조는 그제야 도겸에 대한 한을 푼다.
 
그리고 손자 [[조비]](曹丕)가 왕에 오르자, 태왕(太王)에 추증되었고, 다시 황제에 오르자 태황제(太皇帝)로 추증됐다.
 
==주석==
<references/>
 
== 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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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조비]]
 
[[분류:생년137년 미상태어남]]
[[분류:193년 죽음]]
[[분류:조조와 직계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