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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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 당시 오스트리아는 이중제국이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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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통일운동이 시작된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적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빈 체제]]가 시작된 1815년경으로 잡고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원정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을 격파하고 [[신성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 대부분을 점령하여 [[1805년]]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이탈리아 왕국 (1805년)|이탈리아 왕국]]을 수립하여 통치하였는데, 이때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고취되기 시작했었다. 뒷날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유럽의 각 국가들이 모여 국경선을 다시 정하기 위해 [[빈 회의]] (1815년)를 개최하였다. 빈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들중, 이탈리아의 국경선을 나폴레옹 시대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합의결정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에는 강대국들의 간섭이 이어졌는데,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많은 간섭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여러 각 지역에서부터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고 사람들 사이에선 민족주의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빈 체제빈체제]]에 저항하는 행태로 나타났다는게 특징인데,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가 이탈리아의 북동부(베네치아등)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내에서 자유주의자,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을 억누르려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찍이 [[카르보나리]]등 비밀결사 단체의 활동과 [[마치니]]가 주도한 민족운동이 일어난바 있었는데 실패로 끝나고, 이탈리아에서는 샤르데냐 왕국의 [[카보우르]]가 통일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카보우르]]는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강화한 후 외교적성과를 돋보여 [[185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약속받아 오스트리아에 대하여 통일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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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디아를 비롯한 중북부지방 이탈리아를 통합한 샤르데냐 왕국은 공화주의자인 [[가리발디]]의 활약으로 이탈리아 남부지역인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통합하여 샤르데냐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통일국가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탈리아 왕국]]을 만들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간의 전쟁을 틈타 [[베네치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를 몰아내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전쟁을 이용하여 [[교황령]]을 점령함으로써 통일이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통일은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특히 남북지역간 격차와 문화 문제가 제일컸다. 급속한 산업화로 서유럽처럼 산업화된 북부지역과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 남부 간의 빈부격차는 매우 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내에서는 내전이 격화되었고, 통일전쟁했을때 사상자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통일된 이탈리아왕국은 급속도록 공업화가 이루어져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