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Ryush bot (토론 | 기여)
잔글 우리나라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replaced: 우리나라는 → 대한민국은 (2), 우리나라 → 대한민국 (7) using AWB
308번째 줄:
===회화와 조각속의 곤충===
곤충의 독특한 모습과 다양한 모습으로의 변화, 화려한 색감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영감을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초기 유럽 기독교 예술에서 곤충 그림은 다양한 상징으로 이용되었는데 그 중 꿀벌은 성 마리아, 벌집은 교회, 사슴벌레는 죄, 파리는 고통 등을 상징하며 특히 나비는 프시케 여신으로 영혼과 사랑의 징표로서 쓰였다.
현대 서양화에서는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그림에 영향을 주었고 [[고흐]]의 ‘꽃과 곤충’ [[달리]](S. Dali)의 'Grasshopper(메뚜기)'와 'Groupings of Ants(개미떼)' 그리고 [[후터]](W. Hutter)의 'Butterflies(나비)' 등은 이 작가들의 표징이 되기도 하였다(Hogue, 1987). 국내에서는 조선시대에 곤충을 그린 화가들로 쇠똥구리 조각품 [[김제]], [[김홍도]], [[신사임당]], [[심사정]], [[남계우]] 등 24명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민화에서는 일년초나 다년생의 작은 풀과 꽃들 그리고 그 주위에 친화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곤충을 그린 초충도(草蟲圖)가 주를 이룬다. 이들 소재는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아늑하고 소담하여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어 신사임당과 심사정 등 여성작가의 작품도 많이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남계우선생(1811-1890)은 일생을 나비를 애호하고 나비를 많이 그려 '남나비'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가 그린 나비 그림은 사실성이 매우 뛰어나서 우리나라대한민국 나비 연구의 태두인 석주명 선생께서는 그림으로부터 37종의 나비를 동정하였고, 이 정보로부터 과거 서울부근의 나비상을 유추하여 볼 수 있을 정도라 하였다.
 
우리의 조각물로 곤충을 이용한 대형물을 과거 기록에서 아직까지 확인해 볼 수 없었으나, 1998년 평촌신도시의 중앙공원에 똥을 굴리는 '쇠똥구리'(김규민 작)가 만들어졌고, 앞으로 곤충에 대한 인식이 커질수록 증가될 것으로 판단된다.
 
===공예품속의 곤충===
우리나라의대한민국의 고대 곤충을 이용한 금속공예품 수준은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경주의 금관총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에는 비단벌레의 화려한 딱지날개를 이용하여 장식되어 있었으며 함께 출토된 함 뚜껑에도 비단벌레의 딱지날개가 장식으로 이용되었다(조, 1941). 이 같은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이용한 장식 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간 증거로 법륭사(法隆寺)에서 출토된 비단벌레의 딱지날개가 장식된 나라시대의 옥충(玉蟲)상자를 들 수 있다(小西, 1992). 곤충자체를 이용한 공예품으로는 나비 날개를 이용한 장식품이 많다. 주로 남미산의 화려한 금속성을 띤 몰포([[Morpho]]) 속의 나비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하고,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열대산 나비들을 이용한 것도 많이 상품화되어 있다. 이 외에도 누에나방의 고치를 이용하여 꽃을 만들거나 장식품을 만든 경우는 잠업이 행해지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북미 인디언과 아프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은 선사시대로부터 누에나방 이외의 나방 고치를 이용하여 딸랑이, 목걸이, 팔지, 발지, 지갑 등의 장신구를 제작 이용하였다(Peiger, 1997). 곤충을 디자인한 공예품은 크레타문명의 금장식인 'Creatan Hornets(크레타의 말벌)'로 한 쌍의 말벌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고, 이집트 투탕카멘의 18대 왕조인 아옷페(Ahotpe)여왕의 무덤부장품으로 'Order of the Golden Fly(금제파리장식)'은 고대시대의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나라는대한민국은 역시 신라시대의 금제 나비형 금관 장식이 5-6세기경에 제작된 바 있다. (경주 천마총 출토)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노리개로 나비와 매미 형태가 많이 이용되었으며 머리장식인 떨잠의 떨개에는 특히 나비가 많이 사용되어 이를 쓴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려 마치 나비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나게 하였다. 가까운 중국 북부지방인 만주일대에는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동제 비단벌레'가 이용되었다. 문양으로서 곤충으로 고려시대 동경(銅鏡)중에는 나비, 잠자리, 벌 등의 문양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전통자수에서는 나비와 매미, 그리고 가구의 경첩에서는 주로 나비 문양이 이용되었다.
 
===우표속의 곤충===
322번째 줄:
 
===역사속의 곤충===
일반적으로 곤충은 중요한 사건의 전환을 일으키게 하면서 인간 역사에 영향을 주어왔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벼룩]]이 옮기는 [[흑사병]]으로 25백만 명이란 엄청난 인구가 사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대한민국에서도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황충(蝗蟲)이라 하여 마치 메뚜기류만을 지칭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풀무치]], 멸강충, 멸구 등을 함께 지칭한 것이며 이들에 의한 재난을 충재(蟲災)라고 하여 국가의 3대 재난중의 하나로 취급하였다.
 
곤충은 인간 역사까지 바꿔 놓는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을 떠난다. 그러나 러시아에 비해 3배에 달하는 병력과 뛰어난 전투력, 탁월한 무기를 가지고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했다. 명장 나폴레옹을 패배하게 만든 건 대포가 아닌 크기 1㎜에 불과한 '[[이]]'였다. 이가 옮긴 발진티푸스는 나폴레옹 부대를 거의 전멸에 몰아넣었다. 프랑스로 살아 돌아온 병사는 60만 명 중 2만 명에 불과했다. 만약 나폴레옹에게 이에 대한 과학적 대처법이 있었다면 세계지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곤충의 인간역사에 대한 관여는 동방 원정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작은 말라리아모기 한 마리가 세계지도의 흐름을 바꿨으니 말이다. 또한 곤충은 민족의 고난으로부터 구해주는 역할이나 인류의 문화화를 촉진하기도 하였다. 출애급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사막에서 만나(Manna)를 먹고 허기를 이겼다고 되었는데 이 때의 만나는 위성류라는 식물의 즙액을 빠는 깍지벌레의 분비물이었던 것이다. [[누에]]에서 실크의 생산은 중국에서 5200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700년인 주나라 때로 이미 실내 사육했다는 증거를 그 당시의 시조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고, [[실크로드]](Silk Road)가 생겼을 만큼 중국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Huang, 1987). 18C 코치닐 곤충(Cochineal Insect)이라는 깍지벌레류를 이용한 염료는 세계의 거대 시장을 형성하였다. 꿀이나 밀납의 경제적 가치도 고대로부터 컸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대한민국에서도 백제의 태자 여풍(餘豊)이 직접 벌을 길렀고, 고려시대에는 사봉(寺蜂)이라고 하여 사찰의 중요자원이기도 하였다.
 
===종교 및 민속속의 곤충===
곤충은 어떤 민족 또는 국가에서 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고대 이집트에게 있어 똥풍뎅이류(Phaeniini족, Coprini족)는 기원전 2200년경인 신왕조시대로부터 기원전 1000년경까지 신으로 존재하였다. 이 외에도 아즈텍(Xochiquetzal: 나비여신), 그리이스(Artemis= mylitta: 꿀벌여신), 중국(TschunWan: 작물해충의 지배곤충) 등 여러 문명 발상지에서 종교의식의 대상이었다(Hogue, 1987). 우리나라는대한민국은 누에를 천충(天蟲)이라고 불렸고, 태양의 사자로 생각하였다. 마을에 따라서는 풍년제나 동제때 선잠신(先蠶神)에게 제사를 지냈고(李, 1991), 국가적으로는 고려 때부터 중국의 잠신인 서릉씨를 모시는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李, 1992). 그밖에도 무속의 "창세신화”에서 ‘미륵님이 하늘에서 떨어진 벌레를 축사하여 인간이 되어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 등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무속신화에서 곤충이 신의 활동에 대한 긍정적 또는 악역의 상징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민간에서 신앙형태로 믿어지고 있는 속담과 유사한 짧은 어구가 속신어인데(최 1995) 예를 들면 '귀뚜라미가 방안에서 울면 복이 들어온다.' 또는 '비가 오려면 개미가 둑을 쌓는다.' 등이 있다. 이런 속신어들 중에서 곤충(기타 절지동물포함)이 관련된 어구만도 265구를 찾아 볼 수 있고 이들 가운데 어느 정도 무리가 분류될 수 있는 곤충군만도 11목 25개의 곤충무리가 된다.
 
===놀이속의 곤충===
살아있는 여러 종류의 곤충들이 진귀성이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애완동물(pets)로 이용되어 왔고 최근에 국내에서는 이들을 [[정서곤충]](情緖昆蟲)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은 황제가 베푼 연회에서 반딧불이를 대량으로 방사하여 즐거움을 더 했다고 하며(Huang, 1987), 우리나라의대한민국의 조선시대 남사당의 놀이판에서는 광솔불과 반딧불이의 불빛이 잘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자아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 귀뚜라미류는 특유의 아름다운 소리를 즐기기 위하여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사육되어 오고 있으면서 최근 들어서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진귀성과 호기심 그리고 자연관찰 교육의 일환으로 더 많이 판매되고 있다(小西, 1992). 우리나라에서도대한민국에서도 어린이들이 곤충을 잡아서 또는 잡는 과정을 놀이로 즐겼는데 그 중 풍뎅이돌리기’, ‘잠자리잡기’, ‘개똥벌레잡기’, ‘방아깨비와 방아짓기’ 등 지역별로 민요와 함께 행하던 것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중국에서 곤충의 행동을 모방한 놀이의 한 형태로써 사마귀가 먹이를 잡는 동작을 본떠 만든 중국 쿵푸의 당랑검법도 있다. 곤충은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 놀이의 대상이었다.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귀뚜라미를 싸움시켜 도박을 즐겼는데 1949년 공산화 이후 드물어지고 문화혁명이후 금지가 되었으나, 최근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북경에는 "귀뚜라미싸움협회"가 생겨났을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Pemberton, 1994). 반면에 서양에서는 벼룩 서커스가 한때 널리 주목을 끌었던 적이 있으나 지금은 보기가 어렵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대한민국에서도 곤충이 장난감의 모델이 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곤충 표본을 닮은 단순한 세트로부터 곤충 만화영화인 '벅스 라이프([[Bug's life]])'의 주인공 곤충을 캐릭터로 제작한 장난감이 특정 상품의 사은품으로 제공되고 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