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198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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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기 =
|획득 타이틀 =
|계약금 = 4억1억 원 (FA)5,000만원
|연봉 = 3억 원3억원 (2017년)
|경력 = <nowiki></nowiki>
* [[해태 타이거즈]] (1999년 ~ 2001년)
* [[KIA 타이거즈]] (2001년 ~ 2002년)
* [[현대 유니콘스]] (2003년 ~ 2007년)
* [[넥센 히어로즈|우리 히어로즈]] (2008년)
* [[LG 트윈스]] (2009년 ~ 현재)
|대표국가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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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鄭成勳, [[1980년]] [[6월 27일]] ~ )은 [[KBO 리그]] [[LG 트윈스]]의 [[내야수]]이다.
 
==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시절 ==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졸 신인 전체 1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계약금은 1억 5천만원으로서 야수 출신으로는 거액이었다. 당시에 [[해태 타이거즈]]가 상당히 기대를 하고 지명한 선수였다. 그리하여 입단한 초년도부터 주전으로 발탁되어 경기에 출장하였다. 광주일고 출신의 호타준족 [[유격수]]로서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한 [[이종범]]과 유사한 스타일로 제 2의 [[이종범]]이라 불리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초기에는 유격수이자 상위 타순으로 출장하였는데,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으로 인해서 공격력이 저하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또한 [[유격수]] [[홍세완]]의 존재로 인해서 포지션과 타순을 옮겨 3루수이자 하위 타순으로서 준수한 수비와 상위 타순에 공격 기회를 이어가는 역할로 제 역할을 해냈다.
 
== [[현대 유니콘스]] 시절 ==
[[2003년]] [[현대 유니콘스]] [[외야수]] [[박재홍 (야구인)|박재홍]]의 트레이드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KIA에서[[KIA 타이거즈]]에서 [[이현곤]]과의 포지션 중첩,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 거포 야수의 부재 등을 이유로 성사된 트레이드였다. [[2003년]] 시즌 타율3할대 0.343을타율을 기록했으나, 시즌 중 손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이로 인해 규정 타석타석에 미달로미달해 타격왕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해의 타격왕은 0.342의 [[김동주 (야구인)|김동주]]가 차지하게 되었다. [[2004년]]에는 전년도에 손목 부상 후유증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그 해 9월에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잔여 경기에 출장을 못 하게 되었다. 그는 [[이진영]]과 함께 기소 유예를유예 받았고,처분을 받았다. [[2006년2005년]]부터 월드[[2007년]]까지 베이스볼그는 클래식[[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전으로[[3루수]]로 병역공-수 특례를양면에서 받았다핵심 선수로 활약한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그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3루수]]로 공-수 양면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한다.
 
== [[넥센 히어로즈|우리 히어로즈]] 시절 ==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인계하여 [[2008년]] [[넥센 히어로즈|우리 히어로즈]]가 창단되었을 때 몇몇 선수들의 연봉이 삭감되었으나, 그는 오히려 연봉이 1억 원이 올라갔었다. 이는 그가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제도|FA]] 자격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128010326330110020 히어로즈, 돈이 좋아] - 문화일보</ref> [[2008년]] 시즌 때 그는 부진에 시달렸고, 당시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과의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않았다. 시즌 중에 2군에 내려가는 등 프런트와의 원활하지 못한 시즌으로 기록되며 일반적으로 [[자유계약선수제도|FA]] 자격 취득 전 시즌에 커리어 하이를 보내는 타 선수들과는 다르게 [[자유계약선수제도|FA]]를 앞둔 시즌에 특이하게 커리어 로우를 보내게 된다. 원래 이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 다소 건성으로 보인다는 점, 시즌 초 부진하다가 여름 이후에 급격하게 페이스를 끌어 올리는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 스타일임을 감독이나 코치진이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말이 있다. [[2008년]]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제도|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는데, 구단은 [[자유계약선수제도|FA]] 보상 선수를 받지 않고, 보상금만 받아 갔다. [[LG 트윈스]]의 과거의 [[자유계약선수제도|FA]] 실패 사례와는 다르게 성공적인 [[자유계약선수제도|FA]] 영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 [[LG 트윈스]] 시절 ==
[[2008년]] 시즌 후 [[이진영]]과 함께 [[LG 트윈스]]에 [[자유계약선수제도|FA]] 계약을 했다. 이때 [[LG 트윈스]]가 그를 영입하자 기존 LG에서기존에 활약했던 3루수 [[김상현 (1980년)|김상현]]의 입지가 좁아져 [[김상현 (1980년)|김상현]]은 시즌 중 [[2009년]] [[4월 19일]]에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121경기에 출전해 126안타, 10홈런, 70타점, 타율3할대 3할 1리로타율로 이적 첫 해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12160048 정성훈, "4강으로 '사랑하는' LG팬들에게 보답"] - OSEN</ref> 하지만 [[2009년]]에는 항상 그에게 밀리기만 했던 [[김상현 (1980년)|김상현]]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2010년]]에는 그와 [[김상현 (1980년)|김상현]] 모두 시즌 초반 잔부상 등으로 부진하였는데, [[김상현 (1980년)|김상현]]의 페이스가 현재 더 뒤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부진하였다. 그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부진하던 모습을 떨치고 여름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보여주었다. 2010년에는 1300경기 출장, 1300안타, 600타점, 2000루타를 달성했다. 2011 시즌에는 127경기127경기에 출장출장해 422타수 123안타, 61득점, 57타점, 10홈런, 타율2할대 0.291을타율을 기록하였고 2012 시즌에는 107경기 출전 365타수 113안타, 50득점, 53타점, 12홈런, 타율3할대 0.310의타율의 성적을 남겼다. 2012년부터는 팀의 4번타자이자 주전 3루수의 역할을 맡고 있다맡았다. 2012년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제도|FA]] 자격을 다시 취득한 그는 [[11월 12일]] LG와[[LG 트윈스]]와 계약하여 잔류했다. 2013년 팀을팀이 패넌트레이스 2등으로 만들어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2014년 시즌 중반에는 본 포지션인 3루수에서 1루수로 전향하였으며, 타순도 4번에서 1번으로 옮기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하였다. 2015년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팀을 이끌며 1번부터 4번까지 다양한 타순을 맡고 있으며, 타율도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음주운전 논란==
2015년 8월 10일 오전 7시쯤 서울 송파구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 적발되었으나 다음날 아무 징계 없이 계속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126%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국가대표 경력==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선전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 출신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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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KBO 리그 내야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KBO 리그 1루수]]
[[분류:KBO 리그 2루수]]
[[분류:KBO 리그 3루수]]
[[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
[[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
[[분류:KIA 타이거즈 선수]]
[[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
[[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
[[분류:LG 트윈스 선수]]
[[분류:송정동초등학교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