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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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케냐타 사망 이후 [[케냐의 부통령|부통령]]이었던 [[대니얼 아랍 모이]](Daniel arap Moi)가 예상을 깨고 권력 암투에서 승리해 케냐의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82년]] [[6월]] 개헌으로 케냐는 공식적으로 일당 체제가 되었다. 그 후 [[1991년]] [[12월]], 국민들의 요구로 일당 체제를 폐기하고 [[1992년]] 다당(多黨) 선거가 치러졌다. KANU가 과반수의 표를 획득하고 모이가 재선되었지만 야당도 의회석의 45%를 차지했다.
더 자유화 된 [[1997년]] 선거에서도 모이가 야당의 분열해 힘입어 재선되고 KANU도 간신히 과반수의 표를 획들했다. 그러나 헌법상 모이가 재선을 노릴 수 없게 된 [[2002년]] 대선에서는 야당이 연합하여 [[국민 무지개 연립]](National Rainbow Coalition, NARC)을 결성, [[므와이 키바키]]를 대표로 내세워 당선시켜 독립 후 계속되었던 KANU의 독주에 종지를 찍었다. 그 후 개헌 문제가 케냐 정치의 최대 현안이 되었는데 이 문제로 국민 무지개 연립은 분열되었고 [[2005년]]에는 므와이 키바키가 지지한 개헌안이 대통령의 권한을 충분히 억제하지 않는다는 논란 속에 국민투표 끝에 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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