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롱집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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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커는 "새외(塞外)의 야만적인 날쌔고 용감함의 피를 취하여 중원(中原) 문화의 퇴폐적인 몸에 주입하니 옛 더러움은 제거되었고 새로운 기회가 다시 열려 확장하게 되니 마침내 예기치 못한 세상의 국면을 맞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관롱집단을 묘사하였다.<ref>《금명관총고2편(金明馆丛稿二编)》</ref> 또한 천인커는 여러 차례 《유자산집(庾子山集)》을 인용하여 관롱의 사인(士人)과 [[선비 (민족)|선비]] 호성(胡姓)의 관계를 증명하였다.
 
== 개요 ==
관롱집단은 선비족들의 무사 집단을 가르킨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선비족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선비족의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선비족인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선비족인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선비족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북위때부터 있었던 선비족 무사 집단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선비족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롱집단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벌 귀족들의 족보를 따지면 한족화된 이름을 쓸려고 했던 선비족이 대부분이지만 8주국 관롱 집단은 예전부터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오기 위해 선비족끼리 결혼 하였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자 사용을 추천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원래 한족들을 정복하고 낙양으로 이동하였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은 어릴때의 이름도 선비족의 이름으로 금강나라연이였고 보육견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자 선비족의 관롱집단 한족들을 피지배인으로 만들고.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이 관롱집단은 결국은 선비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유지한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연은 선비족인 독고씨와 친척 관계이다. 양견과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선비족의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나라와 당나라는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인이 아닌 선비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것이 정론이다. 왜냐면 북위의 선비족 지배층들이 중국인 한족들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이 피지배민족이 된 북위에서부터 이어져온 수나라, 당나라 또한 지배층이 선비족 순수 혈통이였으며 피지배민족인 중국인들은 평민이나 하위 계층으로 머물며 상위 계층으로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