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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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덕'''(金九德, ? ~ [[1428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구)[[안동 김씨|안동]](舊 安東)이며 시호는 안정(安靖)이다.
 
간택되는 영화를 누리기도 했으나 후일 폐출되었다.
== 생애 ==
상락군 김묘(金昴)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진사가 되고 음서로 산원에 출사하였다. [[1396년]] 형조의랑(刑曹議郞)을 지냈으나 형부의 일을 잘못 처리해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여러 고을의 군수와 목사 등울 거쳤고 [[1411년]](태종 11)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지내고 있을 때 딸이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명빈]]으로 봉해져 군부로 옮겨가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를 제수받았다. [[1412년]] 한성부윤과 강원도관찰사에 번갈아 임명, [[1413년]] 의정부참지사(參知事)가 되었고 [[1414년]]에는 명나라 [[홍희제|황태자 주고치]]의 생일을 하례하는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벼슬은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으며 [[1427년]]에는 손녀인 [[휘빈 김씨]]가이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영화를 누리기도 했으나 후일 폐출되었다.
 
[[1428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안정(安靖)이다.<ref>《세종실록》39권, 세종10(1428) 3월 10일 3번째 기사</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