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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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이름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br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br />(Five-story Stone Pagoda <br />at Jeongnimsa Temple Site, Buyeo)
|그림 = PaekjePagodaJeongnimsaji3오층석탑 정면.jpg
|그림설명 =
|국가 =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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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탑|석탑]]으로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소재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높이는 8.33m이다. 정림사는[[정림사]]는 사비의 시내 한가운데 있던 중요한 절이었다. 1963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개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한국 석탑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탑 각부의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된 백제 석탑의 형식을 정비한 이 탑 이후 백제 석탑의 형식은 다소의 세부 변화는 있었으나 고려시대까지[[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 건립 시기 ==
건립 시기가 639년으로 분명히 밝혀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석탑이 목탑을 충실히 재현하였고,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그보다 더 소략한 재현을 보여 미술사학계에서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인식해 왔다.<ref>{{저널 인용|성1=김정기|제목=미륵사탑과 정림사탑 -건립시기의 선후에 관하여-|저널=미술사학연구|날짜=1984|호=164|쪽=2|확인날짜=2018-06-26}}</ref> 그런데, 정림사지 제2차·3차 발굴조사를 담당한 윤무병은 정림사가 사비 천도 시기인 6세기 중엽에 창건되었으며, 오층석탑 아래 판축토(단단하게 다진 땅)가 절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며, 석탑이 판축토와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절 창건 당시인 6세기 중엽에 석탑이 건립된 것으로 보았다.<ref>{{서적 인용|성1=윤무병|제목=정림사지발굴조사보고서|날짜=1981|출판사=충남대학교 박물과 : 충청남도청|쪽=15-16|확인날짜=2018-06-26}}</ref>
 
== 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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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gallery mode="packed">
파일: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옥개석구성).jpg|옥개석
파일:Nyelloii.jpg
파일:오층석탑과 정림사지 전경1.jpg|[[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와 함께 찍힌 전경. 탑의 좌측면이 드러나있다.
파일:오층석탑 우측면.jpg|우측면
파일: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초층탑신 명문.jpg|탑신에 명문이 적혀져 있다.
파일: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기단부.jpg|기단부와 하대석
파일:국보 제 9호 정림사지 5층석탑.jpg
파일:정림사지-Jeongnimsa-Temple-Site-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