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역사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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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녀를 군인들에게 선물한걸 근거로 몽골이 잘했다고 주장하는거냐 빡대가리 원숭이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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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사}}
《'''원사'''》(元史)는 중국 [[원나라]]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이십사사]] 중의 하나이다. 편찬자는 송렴, 고계 등이며, 본기 47권, 표 8권, 지 58권, 열전 97권, 합계 21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역사서이다. 편찬 연대는 [[명나라]] [[1369년]]([[홍무]]3년)이며, 이 역사에 수록된 연대는 [[몽골제국]] [[칭기스칸]] 당시의 [[1206년]]부터 [[원 혜종|순제]] [[토곤 테무르]]가 통치한 [[1367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명나라의 건국자이자 한족인 [[주원장]]의 입맛에 맞춰져서 야비(野鄙)한 면이 많으며 중국의 정사집(正史集)인 24사 중에서 가장 평판이 나쁘다. 20세기가 되어 《신원사》가 편찬되었다. 원사는 몽골을 상당히 나쁘게 보았으나 그게옳다고만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원나라는 심지어 하층 군인들에게도 공녀를 선물했다.
 
원나라에서 만자(蠻子) 매빙사(媒聘使) 초욱(梢郁)을 보내면서 그 편에 다음과 같은 중서성(中書省)의 공문을 전달하게 했다. "남송(南宋) 양양부(襄陽府, 오늘날 후베이성)에 새로 편성된 군인(軍人)들이 처를 구하기에 선사(宣使) 초욱으로 하여금 관청 소유 견직(絹織) 1,640단을 가지고 고려국으로 가게 조치했으니 해당 관청을 시켜 관원을 파견해 함께 처가 될 여자들을 물색하도록 하기 바란다." 초욱이 남편 없는 부녀자 140명을 뽑아내라고 심하게 독촉하자 결혼도감(結昏都監)을 설치하고 그때부터 가을까지 민간의 홀어미, 역적의 처, 승려의 딸을 샅샅이 찾아내어 겨우 그 수를 채우니 원성이 크게 일어났다. 한 여자마다 혼례비용으로 비단 12필씩을 지급한 후 만자(蠻子)들에게 각각 보내주자 만자들이 즉시 데리고 원나라로 돌아갔다. 이때 통곡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니 보는 사람마다 슬피 흐느꼈다. <고려사 세가>, 원종 15년(1274), 3월
 
== 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