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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정보
|이름 = 조소앙
|원래 이름 = 趙素昻
|그림 = 조소앙.jpg
|그림크기 = 185px
|출생일 = {{출생일|1887|4|10}}
|출생지 = [[조선]]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평양]]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58|9|10|1887|4|30}}
|국가 = [[대한민국 임시 정부|대한민국]]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반 목록|임시정부]]
|직책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각료|외무총장]]
|대통령 = [[이승만]] 대한 임정 대통령
|총리 = [[신규식]]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대한 임정 총리 임시 권한대행]] <br/> [[노백린]] 대한 임정 총리 <br/> [[김구]] 대한 임정 총리 임시서리 <br/> [[이동녕]] 대한 임정 총리
|임기 = [[1922년]] [[9월 8일]] ~ [[1924년]] [[12월 17일]]
|정당 = [[무소속]]
|학력 = [[메이지 대학|메이지 대학교]] 법학과 학사
|경력 = [[한국독립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br> [[사회당 (대한민국, 1948년)|사회당]] 총재 겸 상임고문<br>[[한국독립당]] 국회의원<br>[[무소속]] 국회의원
|배우자 = 오영선(본부인), 최경록(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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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파주]](坡州) 출신이다.<ref>{{뉴스 인용|이름 =|성 =|저자 =김학준|공저자 =|제목 =소앙 조용은|url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2&n=199509260440|형식 =|뉴스 =|출판사 =[[동아일보]]|쪽 =|날짜 =|확인날짜 =2008-08-07|언어 =|인용 =}}{{깨진 링크|url=http://www.donga.com/fbin/output?sfrm=2&n=199509260440 }}</ref> 본관은 [[함안 조씨|함안]](咸安)이다. 본명은 '''조용은'''(趙鏞殷)이며, [[자 (이름)|자]]는 경중(敬仲)이다. 필명으로 사용하던 '''조소앙'''(趙素昻)이 후에 [[1918년]]을 기하여 개명한 이름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소앙 조용은'으로도 부른다. 조성기(趙成基)라고도 불린다.
 
[http://www.yes24.com/24/Goods/57755235?Acode=101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한 대한민국[1919년]] (박현군, 테마여행신문, 2017)</ref> 조소앙은 1911년 [[상동교회2월 1일]] [[전덕기대한독립선언서]] 목사에 의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 하였지만 여섯개의 종교를 두루 아울러야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1915년 육성교를 창시하였다. 하지만 1918년 삼균주의를 정립한 이후에는 기독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종교통합에 대한 주장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ref name=":0">"즉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삼균주의에서 시작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삼균주의는 조소앙이 기독교에 입교하고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비전이다. 조소앙은 삼균주의 이전에 육성교를 주창하며 종교통삽을 역설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육성교란 기독교작성하였고, 동학,곧바로 유교,일본 불교,도쿄로 대종교,건너가 이슬람유학생들을 등을지도하여 말한다.[[2·8 독립 여섯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논리이다. 육성교 방안은 독립운동을 하는 지사들이, 그리고 자주독립 후 대한의 백성들이 종교의 분열로선언]]을 인해작성하도 서로 반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 한 것이다. 그리고 조소앙의 모든 관심은 “일제 치하에서 압제되어 있는 대한이 일제를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다양한 생각을 섭렵한 것이다. 이같은 심정에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신앙 초창기에는 우월한 기독교사상과 그를 보좌할 다른 사상적 체계들을 보완하여 대한의 자주독립 쟁취와 그 후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육성교 주장도 나온 것이다. 그러나 조소앙은 삼균주의가 정립되면서부터 종교통합에 대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 일제의 축출과 민족의 번영이 지상과제이고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이루는데 기독교 사상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삼균주의와 조소앙에 대한 재조명은 기독교가 아닌 천도교, 즉 동학인들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조소앙 1918년부터 삼균주의에 대한 기본구상을 정립했고, 그 해 한국독립당의 정강에 채택됐으며,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하였다."
[[1919년]] [[2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곧바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2·8 독립 선언]]을 작성하도록 지도하였다. [[1919년]] [[3·1 운동]] 직후인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고, [[삼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작성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장, [[한국독립당]] 당수 등으로 활동했고 [[김구]]·[[여운형]] 등과 [[시사책진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이론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 귀국하여 임시정부 법통성 고수를 주장하였고,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에 [[김구]], [[김규식]] 등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남북협상]] 실패 후에는 노선을 바꾸어 [[대한민국]] 단독정부에 찬성하고 지지하였다. [[1950년]] 제2회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시 [[성북구]]에 출마해서 전국 최다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피랍되었다. 납북 후에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불렸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교]] 학맥으로는 할아버지 [[조성룡]]의 문인이며, 종교 사상적 활동으로는 [[삼균주의]] 사상가이자 [[육성교]]를 창시한 바있다. [[정치]], [[교육]], [[경제]] 평등을 말하는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는 중국 기독교 정치가 [[쑨원]]의 [[삼민주의]]와 일본 유학시절에 번역한 "천부인권론"의 기독교적 '만민평등사상'에 영향을 받아 1918년부터 정립한 정치노선이다.<ref>“이 삼균주의 안에는 “만민평등사상”이 깊이 녹아져 있다. 조소앙은 일본 유학중인 1907년 10월4일 바바타츠이의 저서 “천부인권론”을 번역했다. 이 저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라는 입장을 근거로 한 자유민권사상서(自由民權思想書)다.”
 
 
[http://www.yes24.com/24/Goods/57755235?Acode=101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박현군, 테마여행신문, 2017)</ref> 조소앙은 1911년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에 의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 하였지만 여섯개의 종교를 두루 아울러야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1915년 육성교를 창시하였다. 하지만 1918년 삼균주의를 정립한 이후에는 기독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종교통합에 대한 주장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ref name=":0">"즉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삼균주의에서 시작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삼균주의는 조소앙이 기독교에 입교하고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비전이다. 조소앙은 삼균주의 이전에 육성교를 주창하며 종교통삽을 역설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육성교란 기독교, 동학, 유교, 불교, 대종교, 이슬람 등을 말한다. 이 여섯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논리이다. 육성교 방안은 독립운동을 하는 지사들이, 그리고 자주독립 후 대한의 백성들이 종교의 분열로 인해 서로 반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 한 것이다. 그리고 조소앙의 모든 관심은 “일제 치하에서 압제되어 있는 대한이 일제를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다양한 생각을 섭렵한 것이다. 이같은 심정에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신앙 초창기에는 우월한 기독교사상과 그를 보좌할 다른 사상적 체계들을 보완하여 대한의 자주독립 쟁취와 그 후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육성교 주장도 나온 것이다. 그러나 조소앙은 삼균주의가 정립되면서부터 종교통합에 대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 일제의 축출과 민족의 번영이 지상과제이고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이루는데 기독교 사상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삼균주의와 조소앙에 대한 재조명은 기독교가 아닌 천도교, 즉 동학인들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조소앙 1918년부터 삼균주의에 대한 기본구상을 정립했고, 그 해 한국독립당의 정강에 채택됐으며,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하였다."
 
[http://www.yes24.com/24/Goods/57755235?Acode=101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박현국, 테마여행신문, 2017) 83-8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