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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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
=== 제1차 ===
{{참고|대한청소년개척단}}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 ∼ [[1966년]])의 주요 골자는 전력·석탄의 에너지원과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하여 경제개발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력을 이용하여 경공업 중심으로 발전시켰다. 그 밖에 농업생산력을 확대하여 농업소득을 증대시키며, 수출을 증대하여 국제수지를 균형화하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 등이었다. 또한, [[대한민국군 베트남전 참전|월남전 파병]], [[한독근로자채용협정]]에 의한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파독 간호사]]'로 외화를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의 경제성장률은 7.8%로 목표를 상회하였으며, [[GNP|1인당국민총생산]](GNP)는 $83에서 $126로 증가되었다.
 
=== 제2차 ===
{{참고|김수환#철권통치 비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년]] ∼ [[1971년]])은 식량 자급화와 산림 녹화, 화학·철강·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의 고도화, 10억 달러의 수출 달성(1970), 고용확대,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대, 과학기술의 진흥, 기술수준과 생산성의 향상에 그 목표를 두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요자금 9,800억 원 중 국내자금이 6,029억 원, 외자가 14억 2100만 달러였다. 또한 이 시기에 [[경부 고속도로]]가 지어졌다.
 
===제3차===
{{참고|10월 유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72년]] ∼ [[1976년]])의 목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여 안정적 균형을 이룩하는 데 두었다. 이 기간에는 착수 직전인 [[1971년]] 8월의 ‘[[워터게이트 사건|닉슨 쇼크]]’에 의한 국제경제 질서의 혼란, [[1973년]] 10월의 [[석유파동]] 등으로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었으나, 외자도입의 급증,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동 건설경기 등으로 난국을 극복하여 연평균 9.7%의 성장률을 유지하였다.
 
=== 제4차 ===
{{참고|형제복지원}}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년]] ∼ [[1981년]])은 성장·형평, 능률의 기조 하에 자력성장 구조를 확립하고 사회개발을 통하여 형평을 증진시키며, 기술을 혁신하고 능률을 향상시킬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77년]] 100억 달러 수출 달성,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가 되었지만, 1978년에는 물가고와 부동산 투기, 생활필수품 부족, 각종 생산애로 등의 누적된 문제점이 나타났다. [[1979년]] [[석유파동|제2차 석유파동]]이 가세하여 한국경제를 더욱 어려운 고비로 몰아넣었고, [[1980년]]에는 광주에서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 등의 정국혼란과 사회적 불안, 흉작이 겹쳐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으나 다행히 [[1981년]]에는 경제가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 제5차 ===
{{참고|1986년 아시안 게임}}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2년]] ∼ [[1986년]])은 이때까지 계획의 기조로 삼았던 ‘성장’을 빼고 안정, 능률, 균형을 기조로 하여 물가안정·개방화, 시장 경쟁의 활성화, 지방 및 소외 부문의 개발을 주요정책 대상으로 하였다. 이 계획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킨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1986년]]부터 3저현상의 유리한 국제환경변화를 맞아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투자재원의 자립화로 경제의 질적 구조를 튼튼하게 하였다.
 
=== 제6차 ===
{{참고|1988년 하계 올림픽}}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7년]] ~ [[1991년]])은 ‘능률과 형평을 토대로 한 경제선진화와 국민복지의 증진’을 기본목표로 설정하고, 21세기에 선진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제1단계 실천계획으로 수립되었다. 특히 흑자기조로의 전환에 따라 선진국의 보호주의 압력과 대내적인 소외부문의 소득보상 욕구가 더욱 커지게 되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자율 ·경쟁 ·개방에 입각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 소득분배 개선과 사회개발의 확대, 그리고 고기술부문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의 개편을 중점과제로 삼게 되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목표 7.5%를 상회하여 10%를 달성하였으며, 실업률은 2.4%로 고용안정을 가져왔고, 저축증대에 노력한 결과 국내저축률은 당초 예상보다 높은 36.1%에 이르다.
 
=== 제7차 ===
{{참고|성수대교 붕괴 사고|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92년]] ∼ [[1996년]])자율과 경쟁에 바탕을 두어 경영혁신·근로정신·시민윤리 확립을 통해 21세기 경제사회의 선진화와 민족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목표 아래 기업의 경쟁력 강화, 사회적 형평 제고와 균형 발전, 개방·국제화의 추진과 통일기반 조성 등을 3대전략으로 삼았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7.5%의 실질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 집중을 분산하고, 산업구조 조정을 원활하게 하며, 기술개발·정보화를 도모하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충시켜 나갔다.
 
=== 이후 ===
경제 개발 계획 마지막 연도인 1997년에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나고 1998년 정부는 IMF의 지지로 민간 경제활동 자유 보장과 시장경제질서 편입 재정 안정화를 근거로 경제 개발 계획을 폐기하였고 재정정책, 공공재 관리 등 꼭 필요한 것만 담당하였고 이외의 것은 가급적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였다.
 
== 성과 및 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