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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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오개혁]]과 [[단발령]] 당시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며 저항하였다. '5백년 종사가 드디어 망하니 어찌 한번 싸우지 않겠는가' 또한 '살아서 원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어찌 충의(忠義)의 혼이 되는 것만 같겠는가'라며 [[갑오경장]] 등에 저항한다. 또한 단발령 당시 그는 '두가단(頭可斷)이나 발불가단(髮不可斷)'이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오늘도도도 못 보고서는는데로부터는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그
=== 농민군 출신에 대한 반감과 의심 ===
의병활동을 하면서 최익현을 포함한 유생들은, 유생들과 농민들 사이의 협력에 대한 요구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게 가졌던 적개심과 공포가 뒤섞인 업신여겨 보는 태도를 전혀 극복할 수 없었다.<ref name="gung264">정재식, 《意識과歷史: 韓國의 文化傳統과 社會變動》, (一潮閣, 1991) 264페이지</ref> 최익현은 농민 출신들의 잔인함과 호전성, 살인, 도둑질, 무례함을 극도로 혐오하였다. 정재식은 이를 두고 '최익현은 '살인적이고 도둑질을 자행하는 농민 무리들 을 반대하며'라는 격렬한 글에서 보인, 16세기 독일의 "위험하고, 해로우며, 극악무도한 농민반란자들을" 남모르게 혹은 공공연하게 치고, 죽이고, 찌르라" 주장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보였던 감정적인 반응과 비슷한 반응<ref name="gung264"/>'이라 평하기도 했다.
 
안뇽 안 그래도 그래도 내가 너무 너무해해요요 잘 잘 자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