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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태평양 전쟁|창씨 개명}}
[[1939년]] 4월부터 [[1942년]] 8월까지 경성 계성국민학교 제3대 교장을 겸임하였고 [[1939년]] 9월
[[일제강점기]] 후반 조선총독부로부터 협력 압력을 받았고 총독부는 그에게 기방에 초청하는 등의 회유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1942년]] 8월에는 계성국민학교 교장직을 사임하였고 [[1944년]], 번역서 『[[교부들의 신앙]]』을 출간하였다. 광복 이후 조선교육심의회위원, 조선중등교육위원회위원에 선출되었고 [[1944년]] 8월에는 경성 계성국민학교의 제5대 교장으로 다시 부임하였다.<ref>[http://www.gyeseong1882.es.kr/?doc=sub/m14.php 서울계성초등학교 연혁]</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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