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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oul-Deoksugung-10.jpg|섬네일|230px|오른쪽|덕수궁 석조전. 이곳에서 [[미소공위]]가 개최되어 [[좌우합작위원회]] 회담이 열리곤 했었다.]]
 
이후 주변에서 거듭 정계에 진출하라는 권고에 따라 교육계에서 은퇴할 결심을 하고 정계에 입문하였다. 정계 입문 직후 그는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으며 [[이승만]]의 반탁, 반공 노선을 지지하였다. 정계 입문 직후 그는 [[한국의 군정기|미군정]] [[미국인]] [[도날드 웨터카]]를웨터카를 만났다. 하지 장군을 따라 [[오키나와]]에서 미군정으로 부임, 미군정 정보계통에서 근무했다. [[도널드 웨터카]]의웨터카의 부인은 [[한국인]] [[임수영]]으로임수영으로, 장면은 웨테카의 부인 [[임수영]]의임수영의 학교 동창인 [[경향신문]] 기자 [[윤금자]]를윤금자를 통해 웨터카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후 장면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정치적으로 장면을 도와주었다. [[12월]] 말부터는 [[이승만]], [[김구]] 등이 주도하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도연]]에 의하면 그는 '반탁운동 등의 선봉에 섰다<ref>장면,《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가톨릭출판사, 1998) 566페이지</ref>'고 한다.
 
==== 정계 입문 초기 (1946 ~ 1947) ====